히브리 열왕들의 연대기
히브리 열왕들의 연대기
시몬 J. 드 브리스
(Simon J. De Vries)
우리의 논의는 이제 이 책에서 언급된 통치 시간들에 관하여 몇 가지 설명을 해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 우리는 솔로몬의 통치 기간인 40년(왕상11:42)과 여로보암의 통치 기간인 22년(14:20)을 보았다. 이제 책을 더 읽어 나가면서 우리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치자 각각에게 주어진 통치 기간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여러 왕들이 보좌에 오른 날짜들은 상대 왕의 재임 기간의 관점에서 주어진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주로 헬라어 교정본들은 히브리어 숫자와 일치하지만, 책의 끝부분에서는 심각한 불일치가 생기기 시작한다.
본 글의 목적은 이 주석서-WBC 열왕기상-의 사용자에게 이 어려운 주제가 요구하는 완전한 논의를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완전한 논의는 참고문헌에 나열된 목록에 있는 연구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대되는 견해들에 대한 많은 포괄적인 요약과 가능한 해결을 위해서 독자는 “Chronology of the Old Testament"에 있는 보충적인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열왕기상의 내용은 대략 다윗의 죽음에서 오므로 왕조의 끝에 이르기까지에 해당된다. 우리는 유다의 르호보암과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동시에 그들 각각의 통치를 시작했음을 알고 있으나 그 날짜는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앗시리아의 왕 살만에셀 3세(Shalmaneser III, 주전 859-824년)의 두 개의 분리된 기록으로부터 아합의 죽음과 예후의 등극에 대한 정확한 날짜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왕의 하나로 된 큰 비문에서(ANET 278) 그는 카르칼(Qarqar)에서의 아합과 그가 시리아 동맹들을 대항해서 싸운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이 전쟁은 그의 통치의 여섯 번째 해인 주전 853년에 일어났다. 그의 연대기에서(ANET 280) 그의 통치 열여덟 번째 해인 주전 841년에 그는 예후로부터 조공을 받았다고 주장한다(또한 블랙 오벨리스크에 나타난, 그 앞에서 굽실거리는 예후의 조각을 보라, ANEP122). 열왕기상 22:51에서는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2년 동안 통치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열왕기하 3:1에서는 그의 두 번째 아들인 요람은 유다의 아하시야와 함께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의 왕이었다(왕하9:24, 27). 우리는 여기에서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모두 14년을 통치했던 두 명의 이스라엘 왕들은 아합 비문의 주전 853년과 예후 비문의 주전 841년 사이에 맞추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북쪽 왕국은 통치한 햇수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데 있다.
즉 통치의 마지막 해는 죽은 왕에게 귀속시킴과 동시에 그의 후계자를 위해서도 계산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각의 통치에서 1년을 더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본문에서 일어난 일은 이제 분명해진다. 아하시야는 실제로 단 1년만을 통치했으며, 요람은 11년을 통치한 것이다. 이것은 아합이 853년에 죽었음을 가정하면서 주전 853년과 841년 사이의 간격에 해당하는 총 12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계산을 기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남북 분열의 날짜-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이 즉위한 해-를 알아내는 것은 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이러한 셈을 해 나갈 때, 병행 합계는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유다에서는 르호보암(17), 아비얌(3), 아사(41), 여호사밧(25), 여호람(8) 그리고 아하시야(1) 등 모두 95년을 얻게 된다.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22), 나답(2), 바아사(24), 엘라(2), 오므리(12), 아합(32), 아하시야(2), 요람(12) 등 모두 98년과 시므리의 7일을 얻게 된다.
이스라엘의 남는 2년은 아하시야와 요람에게 적용된 미리 가산하는 방식의 셈법에 의해서 이미 설명 되었다. 그리고 좀더 검증을 해보면 이스라엘은 이러한 계산법을 매우 이른 시작 시기부터 사용한 것에 대한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나답이 아사의 두 번째 해에 왕위에 올라서 2년 동안 통치했고(15:25), 그의 후계자는 아사의 세 번째 해에 통치하기 시작했음(15:28)을 알리는 보고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유다의 서기관들은 다른 계산법(나중에 가산하는 방식의 셈법 혹은 즉위 해를 사용하는 셈법)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계산법에서는 새로운 통치는 이어지는 새로운 해까지 계산되지 않았다. 따라서 통치에서 통치에 이르는 정확한 햇수 계산을 낳았다. 또한 유다 사람들은 아합 가문의 영향 아래 북쪽의 셉법으로 옮겨갔고, 후에는 원래의 계산법을 사용하면서 북쪽의 셈법을 버렸다. 우리는 또한 이스라엘 왕들은 그들의 통치 햇수를 봄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해로부터 계산한 반면에, 유다 왕들은 가을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해로부터 계산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호사밧은 그의 아버지 아사와 함께 통치했기 때문에 그 날부터 그의 통치를 계산했고, 그의 아들 여호람은 이스라엘에서 동시대의 왕인 요람에 대한 열왕기하 1:17에 근거해서 그와 함께 통치했음에 대한 증거가 있다. 이러한 모든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통치와 동시대적인 연대들은 씰레(Edwin R. Thiele)의 특별한 방법을 따르는 의미 있는 형태로 모아질 수 있다. 그의 가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히브리 서기관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셈하는 것에 관해서 합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었다. 또한 MT은 원문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해서 이러한 숫자들을 주의 깊게 보호해 왔다. 이것은 서기관들이 따른 방법들을 존중하기만 하면 지속적이고 정확한 연대기를 위한 원칙을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러한 숫자들의 복잡성은 어리석음도 아니고, 어떠한 경향성이 있는 변경도 아니며, 부주의한 실수도 아닌 것이다.
비록 씰레의 방법을 받아들이는 학자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방법은 모두를 만족시켜 주지는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씰레의 비평가들 중에는 MT과 LXX 사이의 많은 불일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열왕기상 15:2, 아비얌 통치 3년(G 6); 15:9, 아사가 여로보암20년에 등극(G 24); 16:8. 엘라가 아사 26년에 등극(G 20); 16:10, 시므리가 아사 27년에 등극(
히브리 왕국들의 전체 기간을 LXX에 의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이른 통치기에 대한 설명들 뒤에 주요 교정본들에서 불일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획일화?). 이것은 단순히 Kaige 텍스트가
그러나 나는 이러한 설명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한다.
MT은 디브니에 대한 오므리의 승리를 표시하는 아사의 31번째 해와 시므리로부터 권력을 잡음으로써 시작한 오므리의 통치의 길이가 동시대적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이 여러 오아들의 개괄적인 연대기에 맞는 것은
결론적으로 왕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연대들은 맞는 것으로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 (1) 유다의 르호보암(931-913년), 아비얌(913-911년), 아사(911-870년), 여호사밧(870-848년), 여호람(848-841년), 아하시야(841년), (2) 이스라엘의 여로보암(931-910년), 나답(910-909년), 바아사(909-886년), 엘라(886-885년), 시므리(885년), 오므리(885-874년), 아합(874-853년), 아하시야((853년), 요람(852-84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