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렘을 향한 중보기도자의 자세
모슬렘을 향한 중보기도자의 자세
선교대구, 대구호프 윤순덕 목사님
우리가 매일의 삶을 기도로 살면서 그 기도를 전략적으로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전략적인 기도의 대표적인 모델은 “모슬렘을 품는 기도”이다.
이 기도가 시작된지 올해로 13년이 되었다. 지금 세계적으로 이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2천만 명이 넘고,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약22만 명이 참여하고 있다. 기대하기는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또 기도의 능력을 간증으로 만났으면 한다.
그런데 지난 13년간 많은 성도들이 이 기도에 참여했지만 아직도 그들 가운데 엄청난 교회가 세워지고 세워진 교회들을 통해서 복음이 능력있게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은 잘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모슬렘을 향한 기도는 더 뜨거워지고 있는데, 이슬람의 선교 상황은 더 어렵고 그리고 더 막히고 있단다. 그들을 향한 우리의 기도가 달구어 질수록 현장과 상황은 꼬이고 있고 문제도 만들어 지는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사역자에게서 보내 온 편지에 “이곳의 지역 군부지도층은 여전히 자기들의 이득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시민들의 불만은 늘어만 갑니다. 이런 상황에 신이 난 쪽은 탈레반 잔당들입니다. 지금 이들은 외국인 한 사람을 죽이면 천 달러를 주고, 외국인 차량 한 대를 폭파하면 5천 달러를 준다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라고 한다. 물론 "우리들의 목숨 값이 너무 싸서 실망스럽다."는 선교사의 농담이 나를 위로하지만 이런 상황은 모슬렘 전역의 형편이다.
이라크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와 미국 그리고 쿠르드족을 향한 과거 집권층인 수니파의 전면전 선언은 이라크를 다시 내전으로 끌고 가고 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명의 사상자가 만들어 지고 있음을 듣고 보고 있다.
곧 라마단 기간이 오고 만삭된 기도의 날(권능의 날), 모하메드가 코란을 계시 받았다고 하는 그 권능의 밤을 전후해서 일어 날 일들이 이미 우리를 염려하게 한다. 도대체 모슬렘을 생각하면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 끝도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모슬렘을 향한 기도는 어떤 자세여야 하는가?
그것은 복음을 받는 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형제는 동네 구멍가게를 운영하면서 정부병원에서 일하는 외국 NGO소속 간호사의 성실함에 자신들의 성실 없음을 보고 "무엇을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돌아오는 그 성실함에 감동을 받고..."그 후 난민촌에서 복음을 듣고 이전에 받은 감동이 동인이 되어 그 마음이 살아나면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고 했다.
중보기도란 이런 것이다. 인내와 고난이 요구한다. 감사한 것은 한국 교회 가운데 기도운동이 나타나고 그 맛을 경험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특새”와 다른 중보기도운동으로 많은 이들이 기도하고, 크고 작은 교회들이 뜨겁게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기도운동이 일어나고 부흥운동이 일어나 수 만명 아니 그 이상이 기도한다고 해서 순식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누가복음 초두에 등장하는 안나는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 오랫동안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모든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면서도 그래도 기도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주인공이 되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기도하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그 기도운동이 다 살아져도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자리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들의 기도를 통해서 아무것도 변화지 않는 것 같아도 기도의 용사로 남아야 한다. 모슬렘을 향한 기도는 그런 것이다. 우리 눈에는 아무것 안 보여도 지금도 어디선가 모슬렘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그의 행동을 통해서 감동을 받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수십년 뒤에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생애로 받는 그 하나를 위해서 우리가 오늘 기도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여기서 기도하지만 그리고 내일 그렇게 하지만 언제가 그 기도를 통해서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 올 그 날을 기다리며 인내와 고통으로 중보기도자의 삶을 가는 것이다. 이런 중보기도자가 바로 모슬렘을 위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