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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피니의 부흥은 부흥이 아니다!!

משׁה 2013. 6. 6. 13:06

 

찰스 피니의 부흥은 부흥이 아니다!!

 

 

 

 

 

찰스 그랜드슨 피니(Charles Grandison Finney)는 현대 부흥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다. 또는 피니는 어떤 측정표준에 의해서 보아도 미국에서 막대하게 중요한 사람이다. 그는 처음 변호사였지만, 1821년 개종 후 부흥사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의지와 방법들을 동원하여 구원에 이르고자 하였다.

그러나 본인은 피니에 사역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사림의 열심이며, 은혜가 아니라 감정이며 화려한 마케팅에 의한 인간적인 성공이라 정의하고 싶다.

 

 

먼저 피니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피니는 1792년 태어났으며, 평범한 장로교 신자였다. 그러나 어느날 전기 충격과 같은 강력함으로 자신의 몸을 지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고 그 다음날 자신에게 변호를 맡아 달라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제 예수님만을 변호하면서 살도록 정해진 사람이요. 나는 당신을 변호할 수 없습니다.”

 

초 칼빈주의가 지배하던 당시에 인간의 선택권을 주장한 찰스 피니의 가르침은 순식간에 엄청난 인기를 끌며 수많은 사람을 그에게로 이끌었다. 그 당시 칼빈주의자들은 수동적이었고 기다림이 전부였을 때, 인간에 의지를 앞세우는 피니는 단연 돋보였을 것이다.

 

 

존 맥아더 목사는 피니의 등장과 관련해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교회가 전통적 신앙으로부터 차가운 칼빈주의로 떨어져 나가고 있던 그 당시에 피니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칼빈주의는 복음에 대한 초청은 오로지 예정된 사람들에게만 행당되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칼빈주의 복음이 누구에게나 다 동일하게 선포되어야 하고 누구에게나 값없이 주어지는 복된 소식이어야한다는 믿음을 거부했다. 핵심적으로 말해 칼빈주의는 복음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믿음이었다. 피니는 -자신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 게일 목사의 설교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게일 목사는 그의 어떠한 설교에서도 사람들을 개심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나 기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피니는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피니는 회심을 유도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그 방법들은 예배의 순서를 바꾸거나 거칠고 구어적인 말을 사용하거나 기도와 설교중에 개인 이름을 거명하거나 설교중에 질문을 하는 것에서 미디어를 사용하거나 여성 조력자들에 의한 개종권고, 고뇌의 좌석을 만들어 의지를 돋우었다.

 

피니에 의하면 하나님은 독재적이고 폭군에 가까운 하나님이었다. 그는 회심이 오로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한 것이라는 교리를 거부했다.

 

여기에 대해 존 맥아더 목사의 말을 덧 붙이면,

 

찰스 피니는 대담하게도 사람이 타락한 본성이나 거룩한 본성 따위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모든 사람이 회심하는 데 필요했던 것은 본성의 변화가 아니라 의지의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즉, 피니의 신학의 핵심은 인간이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결정이 100%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구원 여부를 결정짖는 것은 인간의 ‘결심’이고 자신과 같이 설교하는 목회자의 가장 큰 책임은 사람들이 구원의 결심을 잘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피니는 ‘전적인 성화(entire sanctification)에 대한 휠씬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강조를 야기하였다. 그것이 ’완전주의(perfectionism)을 주장하였다. 쉽게 말하면, 사람이 죄를 짖지 않고 완전해질 수 있다는 신학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없고 신학도 없다. 오직 자신에 체험과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칼빈주의보다 사람의 의지가 강조되고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강조하는 피니에게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교회를 망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진정한 복음을 만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행위이다. 지금도 조엘 오스틴과 같은 사람들, 빌리 그레함, 로버트 슐러와 같은 목사들이 강조하는 방향이 동일하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피니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평생 잘 믿다가 잠시 죄를 짓고 있는 사이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일 것이다. 피니의 신학을 정리해보면,

 

 

1.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신 분이 아니다.

2. 하나님이 구원할 자를 선택하시고 부르신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이성에 대한 모독이다.

3.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 아니다. 인간은 단지 중립적인 상태로 태어난다.

4.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속은 죄를 100%처리하는 완전한 구속이 아니다.

 

 

“모든 것이 인간의 힘에 달려 있다는 피니의 신학은 개인의 구원과 부흥에 그치지 않고 삶의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고 이안 머리는 말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피니가 이룬 인간적인 성공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된 신학에 대한 확신을 주었을 뿐만이 아니라 사름들로 하여금 그에게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오늘날에도 조용기 목사가 ‘기독교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아닌 길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의 정치적인 능력과 교인의 수로 인해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피니의 신학과 사역에는 성령님의 역사가 없었다고 확신한다. 거기에는 인간의 노력과 의지가 충만한 곳일 뿐이었다. 피니의 부흥은 부흥이 아니라 인간 피티였다.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주어서 사람들을 모으지 못하는 목회자는 실력이 없고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을 많이 모으는 교회와 목사는 인정받는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부른 부흥관을 세워야하며, 피니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결론을 맺으면, 찰스 피니가 말하는 ‘회심’은 철저한 계산과 인간의 결심에 있다. 그래서 그것을 유도하는 것이 그의 사역이었다. 하나님의 주권과 간섭하심을 뒤로하고 인간의 의지와 방법을 앞세운 피니의 사역은 부흥이 아니며 이 시대 교회는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 다시 십자가의 복음을 찾으며 올바른 성경적 부흥관을 확립하고 칼빈주의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미국 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 홍철, CLC

부흥과 부흥주의, 이안 머리 부흥과 개혁사

성경적 부흥관 바로 세우기, 이안 머리, 부흥과 개혁사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옥성호, 부흥과 개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