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 문제와 설명가능성의 원리
The Synoptic and the Principle of Explainability
신현우 (총신대학교 신약학)
I. 서론 : 사본학자 고든 피와 공관 문제
II. 공관 문제 연구사 속에서의 설명 가능성의 원리
III. 설명가능성의 원리
IV. 맺음말
I. 서론 : 사본학자 고든 피와 공관 문제
탁월한 사본학자이며 명석한 주석학자인 고든 피(G. D. Fee)는 공관 문제 연구에 사본학적 방법을 도입할 것을 1978년에 제안한 바 있다. 그가 공관 문제 연구에 사용하고자 한 것은 원문복원을 위한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의 기본 원리인 “설명가능성의 원리”이다. 그는 이러한 제안을 몸소 실천에 옮겨 2년 후에 “공관 문제에 관한 본문 비평적 고찰”(A Text Critical Look at the Synoptic Problem")이란 논문을 발표하였다.
사본 필사자들의 목표는 선본(Vorlage, 필사되는 사본)을 복사하여 재생산(reproduction)하는 것이고 공관복음 저자들의 목적은 자료들을 토대로 복음서를 저술하기 위해 재서술(rewriting)하는 것이다. 그러나, 목표는 서로 다르지만, 사본 필사(copying)와 자료 재서술(rewriting)은 서로 어느 정도 유사한 결과를 낳는다.
사본 필사자들은 두 가지 작업을 한다. 하나는 선본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본의 표현을 바꾸는 것이다. 바로 이허게 바꾸는 작업 때문에 오늘날 남아 있는 사본들이 서로 조금씩 다른 것이고, 이러한 차이들을 종합하면 한 절에도 몇 군데씩 차이점을 발견되는 것이다.
공관복음서 저자들의 재서술은 그 성격상 자료와의 차이를 많이 가져오지만,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자료의 표현을 항상 바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필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필사 때문에 공관복음서들이 서로 유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본 상호간에나 공관복음서 상호간에나 유사성과 함께 비유사성이 존재하는 현상은 동일하다. 이러한 유사성은 사본학과 공관 문제 연구에 사용되는 방법론이 유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II. 공관 문제 연구사 속에서의 설명 가능성의 원리
공관 문제 연구자들은 사본학자 고든 피의 제안이 있기 오래 전에 이미 “설명가능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explainability)를 공관 문제 연구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04년 미국 시카고 대학의 신약학자 버튼(E. D. W. Burton)은 공관 문제 연구에 사용될 일반 원리를 이렇게 진술했다.
다른 것들의 기원을 설명하고, 자기 자신은 다른 것들의 산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상대적으로 말해서, 본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영국 에버딘 대학의 복음주의 신약학자 마샬(I. H. Marshall)도 동일한 원리의 사용을 제안했다.
기본적인 과제는 본문들의 발전을 설명할 관계들의 도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만일 우리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평행구절들을 비교한다면, 문제는 우리가 이 현상을 마태복음을 마가복음의 발전으로, 아니면 그 역으로 또는 그 둘을 공통의 자료로부터 발전 등의 어떤 다른 해결책으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설명사능성의 원리”는 사본학자들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이것은 인간 사유에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어서 여러 학문의 분야에서 이미 학자들이 사용해 온 방법이며, 공관 문제 연구에서도 이미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사용된 원리이다. 터켓(C. M. Tuckett)은 이 원리를 “상대적 개연성의 원리”("a crterion of relative plausibility")라고 부르는데, 그는 이 원리가 많은 학자들에 의해 사용되어 왔음을 잘 보여 주었다.
III. 설명가능성의 원리
설명가능성의 원리는 여러 가설들 중에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가설을 선택하는 원리이다. 이 원리는 사본학자에서 다른 독법들(readings, 사본들에 담긴 표현들)의 발생을 가장 잘 설명하는 독법을 원독법(the original reading, 원문에 담긴 표현)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적용된다. 공관 문제 연구에서 이 원리는 공관복음서의 간의 차이를 잘 설명하는 가설을 택하는 것으로 적용된다.
더 어려운 표현
맥나이트(S. Mcknight)는 설명가능성의 원리를 사용하여 마태우선설보다 마가우선설을 선택한다.
마태가 마가의 ‘더 어려운 독법들’을 제거한 것은 편집비평적으로 쉽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마가가 ‘더 어려운 독법들’을 추가한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다.
맥나이트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표현들이 마태복음의 평행구절에 등장하는 표현들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러한 현상을 더 잘 설명하는 것이 마태우선설과 마가우선설 중에 후자임을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더 어려운 표현을 더 쉽게 고쳤을 확률이 그 반대보다 높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생략과 추가의 발생
파머(W. R. Farmer)에 의하면, “설명을 위한 편집적 주해임이 드러나는 전통의 형태와, 전통을 교회의 요구들에 더욱 접합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확장은 그러한 편집적 주해나 확장으로부터 자유로운 전통의 형태보다 부차적인 것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이 진술은 “주해와 확장”을 다룬다. 그러나, 편집(redaction)은 단지 “주해와 확장”의 방향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 즉 “생략”이나 “변경”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여러 가지 방향들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을 선택하여야 한다. 어떤 현상에 관하여 여러 설명이 가능할 경우,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가설을 선택하는 것이 “설명가능성의 원리”이다.
한 복음서 A가 어떤 요소 x를 추가한 것인지 B가 x를 빠뜨린 것인지 바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저자들의 문체를 관찰하면 때로 “첨가”가 발생했는지, “생략”이 발생했는지 알 수 있다. 복음서 B가 x라는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때, 이 표현이 복음서 A의 평행구절에 등장한다면, B가 x를 생략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가 2:33에는 toi/j sa,bbasin (“안식일에”) 앞에 evn이 있고 마태 12:1에는 evn이 없는데, evn마태에 의해 생략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에는 toi/j sa,bbasin이 약 5번(12:1, 5, 10, 11, 12) 사용되었지만, toi/j sa,bbasin 앞에 evn이 있는 경우가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마태가 toi/j sa,bbasin앞에서 evn을 기피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볼 수 있는 경우는 복음서 A가 x를 가지고 있고, 복음서 B가 x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이다. 이 때, 만일 x가 두 복음서 모두의 문체에 적합하다면, B가 x를 생략할 이유가 없으므로, x를 A의 추가로 간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태 12:2에는 ivdo,ntej (“보고,” “having seen")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의해 기피된 문체가 아니다. 마태복음은 이 표현을 13번 사용하고, 마가복음도 이 표현을 5번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가가 이 표현을 생략했다고 설명하기 보다는 마태가 이 표현을 추가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그러나, 문체를 토대로 항상 이처럼 “추가”인지 “삭제”인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종종 분명한 문체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있고, 특징적인 문체가 파악되어도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문체에 관한 정보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 복음서 A가 x를 가지고 있고, 복음서 B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만일, x가 A에 의해 사용되고, B에 의해서는 기피된 표현이라면, A가 x를 추가했는지, B가 x를 생략했는지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마가 2:23은 tw/n(“그”)을 가지고 있고 (dia. tw/n spori,mwn(“곡식밭을 통과하여”). 그런데, 누가 6:1은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dia. spori,mwn(“곡식밭들을 통과하여”). 그런데, 누가는 전치사 dia.(“통과하여”) 다음에 필요한 정관사를 빠뜨리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누가 1:70, 78; 18:25; 23:19, 25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누가가 마가 2:23의 tw/n을 생략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마가는 dia.다음에 정관사가 필요한데 빠뜨리는 경우가 없다. 마가 2:1; 14:58; 15:10은 모두 정관사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 모든 경우에 정관사가 참으로 필요한데 빠진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마가 2:23에서 마가는 정관사가 필요해서 tw/n을 추가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변경의 발생
지금까지 우리는 “추가”와 “삭제”를 판별하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그런데, 공관복음서 간에는 한 복음서에 있는 표현이 다른 복음서에 없는 현상만이 아니라, 한 복음서에 있는 표현이 다른 복음서에 다르게 표현되어 나타나는 현상도 있다. 복음서 A에 x가 나타나고, 복음서 B에 y가 나타날 때, (두 복음서가 직접 관련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는 x가 y로 변경되었는지, y가 x로 변경되었는지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판단도 저자의 문체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이미 20세기 초에 시카고 대학에서 버튼(E. D. W. Burton)에 의해 명시적으로 제안되었고 학자들에 의해 사용되어 왔다. 이 방법에 의하면, 복음서 A와 B가 각각 표현 x와 y를 가지고 있을 때, A가 y를 x로 변경시켰다는 설명과 B가 x를 y로 변경시켰다는 설명 중에서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을 선택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x가 A의 문체에 적합하고 y는 B의 문체에 적합할 경우, A가 y를 자신의 문체에 맞는 x로 변경하였다고 설명할 수 있지만, B가 x를 자신의 문체에 맞는 y로 변경하였다고 설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태12:2의 ei=pan (“말했다”)은 평행구절인 마가 2:24의 e;legon (“말하고 있었다”)을 마태가 선호하는 표현으로 변경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마가 2:24의 e;legon은 마태 12:2의 ei=pan을 자신이 선호하는 표현으로 고친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피바디(D. B. Peabody)는 문체에 관한 일반적 통계로는 문헌간의 의존 방향을 알아낼 수 없다고 주장하였고, 문헌 의존 방향을 알려주는 단서를 제공하는 어떤 특별한 언어적 현상이 필요함을 언급하였다.
문헌 간의 의존 방향을 알려주는 단서가 제공되는 경우 중에 대표적인 경우는, 평행 구절에 나오는 두 표현 x y 중에 하나는 저자의 문체에 맞지 않고, 다른 하나는 저자의 문체에 맞을 때이다. 복음서 A가 자신이 선호하지 않는 x라는 표현을 가지고 복음서 B는 자신이 선호하는 y라는 표현을 가질 때, x가 B에 의해 y로 변경되었을 가능성이 y가 A에 의해 x로 변경되었을 가능성보다 더 높다.
예를 들어, 마태 12:1은 마태복음이 evn toi/j sa,bbasin (“안식일에”)보다 선호하는 toi/j sa,bbasin(“안식일에”)을, 마가 2:23은 마가복음이 toi/j sa,bbasin보다 선호하지 않는 evn toi/j sa,bbasin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마가가 toi/j sa,bbasin을 evn toi/j sa,bbasin으로 바꾸었을 가능성보다는 마태가 evn toi/j sa,bbasin을 toi/j sa,bbasin으로 바꾸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문헌 간의 방향을 알리는 단서는 다음의 경우에도 발견된다. 그것은 평행구절에 등장하는 표현 x와 y가 하나는 한 복음서에만 적합한 문체이고 다른 하나는 두 복음서 모두에 적합한 경우이다. 복음서 A가 자신의 문체에 적합한 x라는 표현을 가지고, 복음서 B에 나오는 y는 A와 B 모두의 문제에 적합할 때, x가 y로 변경되었을 가능성이 y가 x로 변경되었을 가능성이 y가 x로 변경되었을 가능성보다 더 높다.
마태 12:1에는 evporeu,qh(“갔다”)가 나오고 마가 2:23에는 paraporeu,esqai(“지나가기,” “to pass by")가 나온다. 여기서, evporeu,qh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모두의 문체에 적합하지만, paraporeu,esqai는 마태복음 문체에 적합하지 않고 마가복음 문체에만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이하는 생략-)
IV. 맺음말
우리는 저자들의 문체에 관한 지식을 사용하여 공관복음서 사이의 차이들을 “추가,” “삭제,” “변경” 등으로 행석할 수 있다. 우리는 공관복음서 저자의 문체들에 관한 정보를 토대로 여러 가지 가능한 설명들 중에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관 문제 연구에서 “설명 가능성의 원리”는 이처럼 저자의 문체에 관한 지식에 의해 뒷받침될 때 잘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설명들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을 선택하는 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때때로 어떤 현상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할 수 없을 경우도 있고, 때때로 여러 설명들이 비슷한 정도의 설득력을 지니기 때문에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리하여 그 선택은 선택하는 자의 주관성에 의지하게 되고, 학자들마다 선택의 결과가 달라진다. 학문은 증거와 논리에 입각하여 진행되지만, 증거가 없거나 증거가 서로 갈라질 때에는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주관성은 두 가지 상반되는 설명이 학계에서 경쟁할 때에 설명을 제공하는 학자들의 상호 비판에 의해서 보완되지만, 완전히 해결 되지는 않는다. 때로 나쁜 가설이 능력 있는 학자에 의해서 설득력 있게 개진되어 학계의 지지를 얻어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학문적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열등한 가설이 언젠가 더 우수한 가설에 의해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문의 세계에서 진리란 비록 무지개처럼 잡을 수 없는 것이지만, 사하라 사막의 신기루처럼 여행자를 영원히 기만하는 허상은 아닌 것이다. 비록 우리가 완벽한 설명을 얻지 못하더라고, 지금까지의 설명보다는 좀더 나은 설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사랑하는 자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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