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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에 있어서 교회와 성경과 비평의 역할

משׁה 2010. 6. 22. 18:49

성경 해석에 있어서 교회와 성경과 비평의 역할

-성경 해석 역사에 비추어서

심상법

(총신대학교)

 

 

 

 

성경역사에 대한 이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책임 있는 행동과 규범을 갖게 하는 해석적 책무를 일깨운다. 변혁의 시기마다 교회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던 성경해석의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조망은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우리의 신앙과 삶의 규범으로 삼는 교회가 이 세상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교훈한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성경해석의 역사를 적절히 조망함은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와 ‘역사상에서'(in history)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책임 있는 해석자로서의 삶을 정립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성경해석의 역사를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의 근본적인 논제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교회의 신앙과 삶의 규범이 되는 성경에 대한 이해와 둘째는 그것을 해석하는 해석자(넓게는 신앙 공동체 혹은 교회)에 대한 이해이다. 성경과 해석자에 대한 이해가 적절할 때 성경해석은 올바르게 시행된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식별되어왔고 또한 교회를 통하여 그 뜻을 실행함으로써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증거 되고 수립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교회가 어떻게 비평적(해석적) 도구들을 적절히 사용하여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실행할 것인가 하는 일이다.

 

 

1. 성경해석학의 중요성

 

급변하는 시대 속에 최근 성경해석학의 중요성은 날로 고조되어 여기에 관한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지금은 해석학의 시대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학적 논란의 홍수 속에서 한국 교회는 괄목할만한 양적 성장과 함께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많은 문제들을 노출하면서도 그에 대한 논의를 사려 깊게 하지 못했다. 해석학적 논의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논의들은 보수와 진보의 신학적 대결 구도 내에서 그것도 사변적 학문의 테두리 내에서만 진행되어 옴으로써 해석학은 목회자나 평신도들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특히 교회는 양적인 성장에만 급급하여 해석학적인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였다. 문제의식을 느껴도 성장을 위해 묵과하든지 아니면 성장 저해요인으로 간주해 왔다.

인간은 해석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모든 활동(인간관계, 역사이해, 문학 작업 및 사회생활)은 해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해석은 인간 존재의 한 부분이다. 성경해석 역사를 통해 살펴보는 대로 해석자의 존재론적인 문제인 ‘인간의 죄성과 연약과 한계’로 인하여 해석자는 비록 중생을 하였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문화와 인종과 피부와 성별과 연령과 지역과 성향 혹은 기질을 뛰어넘지 못하는 존재론적 한계 가운데 놓여있다. 인간 해석자의 이러한 존재론적인 딜레마는 역사적 교훈을 통하여, 신앙 공동체내에서 기도와 말씀과 성령의 도움아래, 지속적 회개와 성숙한 대화로 극복되어져야 한다. 성경 해석의 역사를 고찰해 봄은 급변하는 시대 속에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그것을 선포하며 실행해야 할 말씀의 사역자들에게 의미 있는 해석적 규범과 원리를 제시해 줄 것이다.

 

 

2. 성경 해석역사에 대한 고찰: 해석학적 발전과 문제점

 

성경은 그 자체가 ‘해석된 역사’이다. 성경에 기술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전달은 적절한 해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해석된 역사’로서 성경은 성경 본문의 기원과 수집과 보존과 전달의 전 과정 뿐만 아니라 그 내용 속에도 잘 드러난다. 성경에서 모세와 선지자들과 포로 후기의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뜻의 바른 해석자들로 행동하였고, 예수님의 생애도 그 시작부터 구약 예언의 성취로 해석되어졌고, 바울의 이방인에 대한 선교 역시도 그 본질상 헬라적인 상황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재해석된 것이다. 특별히 신약은 구약의 해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성경의 이러한 해석적 본질을 이해 할 때에 성경의 바른 해석은 더없이 중요하다. 성경의 바른 해석을 위해 해석자는 먼저 성경해석의 역사를 통해 올바른 해석이 무엇이며 어떻게 바른 해석이 이루어져야 할지를 살피며, 그 바른 해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해석상에 있어서 성경 자체의 본질과 함께 교회(교리)와 비평의 역할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본 논문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성경과 교회와 비평의 역할과 상관관계를 성경해석의 역사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 성경해석의 역사를 크게 네 기간으로 구분하여 각 기간의 표준적 혹은 대표적 해석방법을 중심으로 이점을 논의할 것이다. 첫째는 ‘알레고리적인 해석’을 표준해석으로 사용한 초대교회에서 중세까지의 기간을 교회와 교리의 역할의 중요성과 그 한계를 중심으로 상고할 것이며, 두 번째는 ‘문법적-역사적인 해석’을 표준적 해석으로 받아들인 종교개혁에서 경건주의(혹은 그 이후)까지의 성경중심의 해석을 건전한 비평의 필요성과 함께 상고하며. 세 번째는 ‘역사-비평적인 해석’을 중심적인 해석체계로 받아들인 현대주의적인 해석을 비평의 역할과 한계를 중심으로 상고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비평의 주관성과 임의성을 공격하며 소위 ‘일리(一理)의 해석학’을 주장하는 ‘후기-현대주의적인 해석’을 살펴볼 것이다.

 

가. 초대에서 중세까지: 교회(교리/전통)의 권위와 알레고리적인 해석

1세기를 지나면서 초대 교회는 이단들로부터 복음과 교회와 신앙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경의 결정과 함께 정통 신학과 성경해석의 틀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적절한 성경해석의 틀의 결정은 정통과 이단의 선을 긋는 잣대가 되었다. 당시의 다양한 해석들에 대하여 정통과 이단의 시비(是非)를 결정해야 하는 절대적 권위와 기준이 공교회에 부여되었다. 이러한 권위를 위임받은 초대교회의 공의회(Council)는 교리논쟁을 통하여 ‘성경의 영감과 권위’에 기초한 ‘예수 그리스도 중심성’과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에 따라 성경해석의 적법성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중세로 넘어오면서 공의회를 통하여 표준적인 해석의 틀을 세웠던 제도적 교회가 타락하여 그 권위를 남용하고 절대화하면서 성경해석은 당시의 교회 교리(전통)에 철저히 종속되었고 해석의 건전한 비평적 기능은 상실하였다. 한 마디로 중세에 와서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교회와 교리 혹은 전통의 적절한 역할과 순기능이 역기능으로 전환되었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교회와 교리의 역할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초대교회의 해석적인 틀(표준해석)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초대교회 기간에는 크게 두 가지 주된 해석방법이 나타났다. 하나는 안디옥 학파로부터 유래된 ‘문법적-역사적인’(grammatico- historical) 해석방법이며 또 다른 하나는 유대 사가인 필로(Philo)의 해석적 전통이 오리겐(Origen)에 의해서 계승되어 발전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알레고리적인’(allegorical) 해석방법이다. 이후 이들 두 해석방법 중에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알레고리적인 해석방법이 초대교회의 성경해석과 신학서술의 표준적 해석체계로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해석방법은 중세를 거쳐 가는 동안 본문 자체의 주석적 의미를 추구하지 못한 채 타락한 교권과 교리(dogma)에 종속되어 건전한 비평의 시각 없이 해석학의 정체기를 맞게 될 뿐 아니라 중세 교회의 암흑기를 맞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알레고리적인 해석은 그 적법성의 논란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중세의 오용과 남용에 근거하여 알레고리적인 해석이 그 당시 초대교회의 표준적 해석체계로 받아들여진 것은 교회의 명백한 잘못(오류)이기 때문에 이것을 교회의 성경 오석(誤釋)의 확실한 예로서 비난하는 일부 비평주의 학자들(특히 Farrar)의 파괴적이며 비-신앙적인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초대교회의 알레고리적 해석은 안디옥 학파의 문법적-역사적인 해석보다 더 ‘성경의 영감(inspiration)과 권위(authority)’와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에 기초한 ‘그리스도 중심적인’ 해석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점이 당시의 알리고리적 해석이 적법성을 갖는 이유이다. 특히 필자의 견해로는 이 해석방법이 그 외의 다른 해석방법들을 완전히 거부하는 ‘절대적인 해석 체계’로 생각하지 않고 그것들과 적절하게 연관하여 사용하는 한 이 해석방법 역시도 의미 있고 요긴한 방법이라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공교회의 권위와 역할의 적법성과 중요성’을 인식한다. 다시 말하면 성경해석에 있어서 교회의 권위 혹은 교리(전통)의 중요성을 이해한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초대교회가 안디옥 학파의 ‘문법적-역사적인 해석’을 표준적인 해석으로 거부하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알레고리적인 해석’을 표준적인 해석으로 채택하게 된 근본 이유는 당시 후자의 해석이 전자의 해석보다는 더 ‘성경의 권위(영감)’와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을 따라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의회는 성경의 영감에 대한 강조와 신학적/교리적 정통성에 근거하여 알레고리적인 해석을 당시의 표준해석으로 채택하게 된다. 이점이 초대교회가 알레고리적인 해석방법을 표준적인 해석체계로 채택하게 된 배경이며 또한 우리가 초대교회의 교리논쟁의 적법성과 중요성을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 결국 이 해석적 원리는 교부신학의 대표격인 어거스틴(Augustine)에 의해 강조된 성경의 권위(high view of Scriptures)와 교회의 권위(high view of church)의 중요성을 통해 확인된다.

 

어거스틴은 성경을 신적으로 영감된, 무오하며, 신앙의 절대적 권위를 지닌 것으로 이해하였다. 특별히 그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강조와 함께 성경해석에 있어서 교회의 권위를 매우 강조하여,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there is no salvation apart from the church)고 주장하였다. 그는 “오직 교회 안에서만 사랑의 율법이 참되게 작용할 수 있으며. 교회가 구원의 지식을 중개하며, 순결한 삶은 교회 밖에서는 유지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참된 교리를 보호하고, 신자를 신앙적으로 잘 인도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사도적인 가르침과 교부들의 작품들, 그리고 공교회(공의회)의 결정과 신조에 기초한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을 발전하여 그것을 잘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점에서 성경해석에 있어서 교리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하며, 올바른 교리는 신자를 바른 신앙으로 인도할 뿐 아니라 정통과 이단의 구별하는 잣대로서의 기능과 성경적 진리를 보호하고 보존하는 ‘해석적인 울타리’로서의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성경해석에 있어서 교리학의 역할과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중세에 이르러 교리학이 성경해석으로부터 분리되고 제도적인 교회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하여 그 권위를 남용 혹은 오용함으로써 성경해석에 있어서 교리학(dogmatics)의 역기능이 나타났고 교리학은 도리어 성경적인 진리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결국 성경은 타락한 교회(교리/전통)에 의하여 ‘바벨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의 시간을 맞게 된다. 여기에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기치아래 안디옥 학파의 ‘문법적-역사적인 해석’을 교회의 표준적인 해석방법으로 채택하여 성경해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게 된다. 물론 종교개혁의 이러한 해석원리는 비평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교회의 모든 권위로부터 이탈하여 개인적이고 자율적인 입장에서 해석하는 “권위 일반(전반)으로부터의 탈피”가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해석원리)과 초대교회의 가르침(해석원리)으로 돌아간 것이었고, 이것들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초대에서 중세까지의 기간을 통하여 성경해석에 있어서 교회와 교리의 중요성을 인식함과 동시에 그것의 남용과 오용의 위험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 종교개혁에서 경건주의까지: 성경의 권위와 문법적-역사적인 해석

종교개혁은 해석학적 사고의 일대 전환점이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타락한 교회 내에서의 포로생활로부터의 탈출을 하게 되는 ‘성경의 출애굽’ 혹은 ‘성경의 바벨론 포로귀향’과 같은 사건이었다. 즉, 종교개혁을 통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 가운데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성경 자체의 존재론적인 의미를 회복하게 되었고, 그 결과 Sola Scriptura로 표현된 성경의 권위는 어떤 다른 권위(교회나 교리/전통의 권위)보다도 우선하게 되었다. 특히 성경은 단순한 ‘역사적 문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의 ‘선포를 위한 본문’으로 제시되어 졌고, 이 경우 성경의 중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모든 성경은 이 관점에서 해석되어져야 하였다(요 5:39와 눅 24:44-46 참조). 이러한 해석원리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경해석의 우선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의 기치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o Christo),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형식상의 원리(formal principle)이고, 뒤의 것들은 실체상의 원리들(material principles)이다. 해석방법의 관점에서 볼 때 종교개혁의 해석은 초대교회의 안디옥 학파의 해석방법이었던 성경 본문에 대한 ‘문법적-역사적인’(grammatical-historical) 해석방법이 전통(교리)과 교회의 권위에 철저히 기초한 성경의 알레고리적인 해석을 대치하게 되었고, 여기에 해석자의 주의 깊고 진지한 해석적 책무(herme- neutical responsibility)가 무겁게 부가되었다. 더 이상 해석과정에서 전통과 교회의 권위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자체의 권위 위에 서서 무분별한 권력과 통제력을 휘두를 수가 없기 때문에 해석자는 철저히 본문에 입각하여 보다 적절하고 주의 깊고 책임 있는 해석을 시도해야 하였다. 즉, 성경적인 진리가 드러나기 위해서 해석자는 교회의 무분별하고 부적절한 전통과 권위에 예속되지 아니하고 성령의 인도하심 하에 건전한 비평적인(문법적-역사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다 적절하고 책임 있는 해석을 시도해야 한다.

 

특히 종교개혁은 문예부흥의 해석(renaissance hermeneutics)으로부터 영향을 받음으로써 성경해석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와 믿음과 성령의 조명하심에 기초한 이성(reason) 혹은 학문(science)과 비평(criticism)의 순기능을 받아들이게 된다. 종교개혁이 추구한 ‘문법적-역사적인’ 해석은 이러한 문예부흥적인 해석적 시도의 연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은 전통과 제도적 교회의 타락한 권위에 반발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성경의 영감)를 회복하였을 뿐 아니라, 성경의 역사적으로 결정된 본질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종교개혁자들은 초대교회의 기독론적이고 복음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이 경우에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의 중요성과 ‘이신 칭의’의 교리는 성경의 맥을 뚫는 ‘내용 비평’(Sachkritik)의 근원이 되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종교개혁 후기의 교회는 개혁자들의 “성경을 성경 되게 하자”는 개혁의 외침과 투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경 해석은 여전히 교리학에 종속된 채 본문 자체의 정확한 원 의미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미비하였다. 여기에 스페너(Spener)와 프랑케(Francke)에 의해 시작된 독일경건주의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ible)는 기치를 가지고 종교개혁의 해석적 원리로 돌아가 성경적 권위에 기초한 성경 신학을 태동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독일경건주의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기치아래 종교개혁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지만 합리주의와 신비주의의 공격으로부터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함으로써 아쉽게도 신비주의(mysticism) 혹은 정적주의(Quietism)와 합리주의(Rationalism)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점은 일부 사람들의 주장처럼 종교개혁자들의 이러한 주장이 결코 교회와 교리와 전통의 중요성을 무시한 개인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사도적인 가르침과 초대교회(참 교회)를 돌아간 해석적 시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은 결코 성경해석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만을 강조하여 교회와 교리와 전통의 권위와 중요성을 무시 혹은 간과한 것은 아니었다. 실바(Silva)의 주장처럼, “종교개혁은 전통의 남용과의 단절을 뜻하지만 전통 자체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이점에 있어서 칼뱅(Calvin)은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는 어거스틴(Augustine)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성경해석에 있어서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도 칼뱅을 포함한 종교개혁자들은 중세를 통해 드러난 교회의 역기능 혹은 교회 권위의 남용과 오용을 경계하여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져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t semper reformanda)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에 따르면 교회는 성경적 원리에 따라 개혁되어져야 하는데 그것은 단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semper) 개혁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종교개혁의 슬로건들의 주체가 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슬로건은 성경적 진리와 성경적 권위가 절대적 혹은 최종적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슬로건은 “성경이 성경을 해석해야 된다”(scriptura sacra sui ipsius interpres)는 성경해석의 원리인 성경의 유비(analogia scriptura)를 확증하는 계기가 된다.

 

정리하자면, 종교개혁은 다음과 같은 성경해석의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1)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슬로건 아래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회복한 것으로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scriptura sacra sui ipsius interpres)는 해석적인 원리인 ‘성경의 유비’(analogia scriptura)를 태동하였다.

2) 종교개혁은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there is no salvation apart from the church)는 주장과 함께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져야 한다”(ecclesia reformata et semper reformanda)는 외침 아래 사도적인 가르침과 참 교회(초대교회)로 돌아간 운동으로서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 혹은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이라는 해석적인 원리를 재차 확고히 하였다.

위의 두 가지 성경해석의 원리를 통합하여 종교개혁의 성경해석의 원리를 정리하자면,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성경의 유비 내에서의 신앙의 규범 혹은 신앙의 유비(regula fidei or analogia fidei within analogia scriptura)에 비추어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3) 끝으로 종교개혁이 택한 ‘문법적-역사적인 해석’은 성경본문의 원의미를 파악하는데 적절한/건전한 비평의 역할 혹은 비평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석에 있어서 이성 혹은 비평의 기능에 대한 문제는 계몽주의를 통하여 더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역사-비평적 해석은 성경해석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출현함으로써 앞에서 논의한 교회와 성경의 권위와 역할과 함께 이성과 비평의 역할에 대한 문제를 야기하는 화두가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초대에서 중세를 거쳐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의 성경해석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성경해석에 있어서 교회와 성경, 혹은 교리(전통)와 성경의 상호 역할과 상관관계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충적이다.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상호 보충적이면서도 나선적인 모습으로 발전하는 관계 속에서 그 역할들을 이해하여야 한다. 이것은 마치 소라 고동의 성장의 모습(도표 참조)을 통해 그 관계를 정리해 볼 수 있다. 교회(의 전통)가 소라 고동의 껍데기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은 소라 고동의 생명체로 이해된다. 소라 고동의 껍데기(교회)가 외부의 공격(이단)으로부터 소라 고동의 생명체(성경적 진리)를 보호하고 보존하는 기능을 한다면, 그 생명체인 성경(성경적 진리)은 소라 고동의 껍데기를 자라게(성장/성숙) 하는 기능을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교회를 새롭게 하고 자라게 한다는 의미로 결국 교회는 성령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의해서 개혁되어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소라 고동의 이러한 모습은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이 외친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와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져야 한다”는 두 슬로건의 융합이기도 하다.

 

※ 성경과 교회의 나선적인 상호관계(소라 고동의 예)

개혁(생명체)

 

 

성경(하나님의 말씀) 보호(껍데기) 교회(전통)

 

다. 계몽주의 영향아래: 역사비평과 그에 대한 반응들

이후 계몽주의(Enlightenment)의 영향 아래 성경해석은 전통과 제도적 교회의 권위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고, 결국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교회를 성령이 내주 하시는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단순히 역사상의 제도적 교회로 간주하였다. 계몽주의 사상은 비평적 이성을 절대화하여 성경을 인간 혹은 특정 종교 집단(초대교회)의 이념적 산물(ideological product)로서의 ‘역사적 문서’(historical document)로만 이해함으로써 성경을 ‘역사비평’(historical criticism)의 눈으로 분해하고 해석하였다.

 

계몽주의 사상에 뿌리를 둔 역사비평의 해석방법은 인간이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객관적 진리’를 완벽하게 재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을 진리 추구의 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절대적인 기준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계몽주의적 해석의 중심에는 자유와 자율의 주체적 인간(Sein[존재자]로서의 인간)으로서 ‘근대적 자아’(modern self)에 대한 이해가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역사비평의 해석방법은 인간 이성을 절대화하는 ‘기능적인 무신론’을 그 배후 이념으로 삼았다는 비평을 받게 된다. 이처럼 역사비평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의 기록을 신화(myth)로 간주하고, 성경을 철저히 인간의 역사적인 산물로만 생각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권위는 추락되고 성경 본문은 철저히 파편화되거나 비신화화되었고 복음의 역사적 본질과 능력은 상실되었다. 이러한 역사비평의 해석방법의 시도는 제도적인 교회가 자신들의 행동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이나 기득권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함으로써 야기된 성경 권위의 남용과 부패에 대한 일종의 반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경우 역사비평은 교회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진리보다는 교회를 떠난 자율적 인간의 이성이 추구하는 ‘순수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를 탐구고자 하였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역사비평의 해석적 시도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와 ‘신앙의 그리스도(Christ of Faith)’를 철저히 구분하는 해석적 결과를 초래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를 떠난 자율적 인간 이성의 비평적 추구를 만나게 된다. 이것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비평의 역기능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비평의 파괴적 모습을 통해 우리는 자율적 이성 혹은 자율적 비평의 오용과 남용의 결과를 목도하게 된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권위와 위탁에 겸손히 순종하고(마 28:16-20) 그 분의 섬김과 수난의 모습을 따름으로(막 8:34 이하, 10:42-45; 고전 11:1)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와 말씀의 권위를 이용하여 경제적인 수탈과 착복을 자행하고 정치적으로 압제하고 군림하는 지배자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말씀이 ‘비신화화’(demythologizing) 되었다. 사실 비신화화 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말씀(하나님의 권위)을 빙자하여 행동하는 부패한 제도적인 교회의 신앙적 행위들이다.

 

그러나 이들 역사비평주의자들 역시도 합리주의자들처럼 인간 실존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외면하고 오직 이성의 상아탑에만 갇혀 ‘객관적/과학적 진리’만을 추구하는 일종의 '데카르트적인 고립'(Cartesian isolation)추구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데카르트(Descartes)의 명제인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로부터 제시된 ‘일인칭 확실성’(1st person certainty)에 기초하여 인간이성을 가치판단의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잣대로 주장하는 역사비평에 대한 공격은 세 가지로 나타났는데 첫째는 역사비평의 무의미함을 공격한 ‘변증법적-실존주의적 해석’(Dialectical- existential Interpretation)이고, 둘째는 성경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역사비평에 대하여 성경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성경신학운동’(Biblical Theology Movement)이며 셋째는 본문 배후의 세계(the world behind the text)와 그 의미를 추구하는 역사비평에 대하여 본문 자체의 의미를 강조하는 ‘문학-비평적 해석방법’(Literary criticism)이다. 이러한 해석들은 비평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역사비평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함으로써 비평의 역할과 기능을 보여준 해석들이었다. 결국 비평의 사용에 대한 문제는 비평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어떤 신학적인 전제 혹은 선 이해 하에서 비평을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먼저 역사비평에 대한 비평의 시작은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Heidegger)로부터 영향을 받은 불트만(Bultmann)에 의해서 추구된 변증법적-실존주의적인 해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변증법적-실존주의적인 해석

불트만(Bultmann)은 성경의 역사적인 진정성을 무시하고 그것의 실존적인 의미를 추구함으로써 변증법적(dialectical) 해석의 길을 열었다. 불트만이 주장하는 ‘변증법적 해석’이란 전쟁, 가난, 기아, 학대, 인권유린, 압제 등과 같은 인간의 실존적 문제들을 무시하고 소위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만을 재건하는 역사비평의 허구와 무의미성을 공격(antithesis) 하면서도 비신화방법이라는 역사비평의 도구를 사용하여(thesis) 당시의 초대교회의 삶의 모습(Sitz im Leben Ecclesiae)과 케리그마(kerygma)를 재건(가설적인 재건)하여 이것을 우리의 실존에 적용하는(synthesis) 해석방법을 말한다. 특히 불트만의 해석방법 가운데 순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중립성)을 재건할 수 있다는 역사비평에 대한 불트만의 회의인 “전제 없는 해석이 가능한가?”는 해석학계의 큰 파장을 일으켰고, 그때부터 해석자의 전제(presupposition)나 선 이해(pre- understanding)에 대한 이슈는 해석의 명제로 받아드려졌다.

 

결국 역사비평에 의해 성경의 영감과 역사성은 부인되고 성경의 전체성과 통일성은 깨어져서 성경본문이 파편화되어짐으로 종교 개혁으로 인하여 확립된 성경의 권위는 또 다시 땅에 떨어지고 이성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는 부인된다. 물론 그렇다고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역사-비평적 방법이 전혀 무가치하거나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다. 적절한 비평적 시각은 필요하다. 건전한 비평적 해석방법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잘못된 제도적 권위의 남용을 견제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원 뜻을 간파할 수만 있다면 비평은 유익한 해석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역사비평 역시도 완전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자의 전제나 선 이해 가운데에 진행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적절하게 사용될 수만 있다면, 역사비평은 유익한 해석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즉,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비평적 인식과 관점에서 우리가 역사-비평적 도구를 사용하여 성경 본문이 나온 가장 근접한 상황을 올바로 재건할 수만 있다면, 이 해석 방법은 본문의 의미를 바로 깨닫는데 큰 공헌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성경해석의 역사에서 역사비평이 남긴 문제점이며 과제이기도 하다.

역사비평의 객관성의 허구와 무의미함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난 변증법적-실존주의적인 해석방법 외에도 역사비평은 또 다른 면에서 공격을 받았는데 그것은 ‘성경신학운동’이다.

 

(2) 성경신학운동(biblical theology movement)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성경 내의 순수 역사적 사실의 재건을 위하여 성경을 파편화시킨 역사비평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성경신학운동’은 성경의 권위와 함께 성경의 전체성 혹은 통전성(totality) 통일성(unity)을 주장하고 성경의 정경성(canonicity)을 강조한다. 그리고 성경의 신적 기원에 기초하여 성경의 구원사적 이해를 통해 성경신학적 메시지를 찾는데 그 주안점이 있다. 성경 신학은 성경 속에 나타난 특별한 주제나 모티브(언약; 율법; 사랑; 교제; 땅; 공동체; 등)를 중심으로 성경 전체에 흘러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구속사)을 감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우리가 말하는 ‘구속사적 해석 방법’이나 ‘정경적 해석 방법’은 이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도 하나의 주제(theme)나 모티브(motif)가 아무리 적절한 성경적 주제나 모티브라 할지라도 성경의 모든 진리를 다 망라하거나 포괄할 수가 없음을 보게 된다(‘정경 내의 정경’[a canon within the canon]의 원리). 사실 중심 되는 한 주제(핵심주제)에 의하여 성경의 모든 진리를 다 설명할 수가 없고 또한 억지로 그렇게 한다면 이것 역시도 하나님의 풍성한 진리를 축소하는 시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도 풍성하고 부요하다. 성경에서 나온 하나의 주제나 모티브로 성경의 모든 진리를 다 포괄하여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 신학은 통일성(unity)내의 다양성(diversity)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여기서도 성경의 권위에 대한 문제와 함께 해석자의 존재론적인 문제인 해석의 주관성과 임의성과 부분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신학적 해석방법은 정경성에 기초하여 성경의 신적 기원(영감과 권위의 문제)과 교회의 중요성(교회를 위한 신학), 그리고 성경의 전체성과 통일성을 강조(정경으로서의 성경)하고 있음을 본다.

역사-비평적 해석방법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나타난 또 다른 해석방법은 본문 중심의 문학-비평적 해석방법이다.

 

(3) 본문중심의 문학-비평적 해석: 구조주의적-문학적-수사학적 해석

본문중심의 문학-비평적 해석방법은 역사비평이 ‘본문 자체(text itself)의 의미’보다는 본문의 역사성과 그 기원에 대한 ‘본문 배후에 있는 세계’(the world behind the text)에 대한 의미를 추구하는데 관심이 집중된 것과 그들이 제시한 성경(각 권)의 저술 과정(기원/구전→전승→편집)에 대한 수많은 가설적 건설들과 그것들의 불일치에 대해 식상한 나머지 그 해결책으로 나온 해석 방법이다. 이 해석방법은 본문의 역사인 기원과 저술과정에 대한 탐구보다는 최종 본문에 대한 의미에 그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각 권) 성경 본문의 통일성과 그에 따른 본문(저자)의 의도성을 추구한다. 이 해석방법은 (최종)본문이 가진 통일성과 역동성을 잘 이해하도록 해주는 것으로 70년에 시작하여(구조주의적 해석) 80년 이후부터(문학적 해석)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해석방법은 해석자가 본문의 역사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전제를 기본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한 ‘본문 자체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최근 문학적인 해석방법 내에서 성경의 장르(genre)에 대한 인식은 성경 각 권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특별히 구조주의적 해석에 있어 유의할 점은 하나의 본문이 특정된 하나의 구조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본문 자체가 저자의 의도를 말하는데 있어 구조적으로 어떤 제약과 울타리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독자가 어떤 강조점이나 견해를 가지고 본문을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개의 구조를 획득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해석자가 본문을 통해 획득한 그 구조가 본문 자체로부터 충분한 입증을 받느냐에 따라 그 구조의 적법성을 확증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가 본문을 통해 획득한 구조는 그 본문 자체로부터 적절한 입증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결코 그 본문 자체는 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본문(의 메시지)이란 항상 본문에서 나온 어떤 구조(로 형성된 메시지)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국 이것은 우리가 성경신학적 방법에서 본 대로 하나의 적절한 주제에 의해 구성된 성경 신학이란 성경이 말하는 전부의 메시지는 결코 될 수 없다는 논증과 같다. 이것은 특정한 방법을 통해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 가운데 얻은 해석적 결실들이 전체 성경의 모든 진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본문의 형식과 구조를 이해하는 구조주의적 해석이나 문학적 해석에 있어서도 여전히 해석자의 주관성과 임의성과 부분성의 문제가 대두되며 이들 해석들은 ‘본문 자체의 의미’(본문의 원 의미) 혹은 ‘본문 안에 있는 저자의 의미’를 재구성하는데 있어서 어느 정도 적법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자의 견해나 관점 혹은 선 이해에 따라서 이것들이 재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해석들의 적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본문과 해석자간의 적절한 대화가 모색되어져야 하고, 이러한 대화를 통해 적절한 성경적인 메시지를 얻게 된다. 여기에 다차원적인 성경 해석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어떤 개인과 특정 교파가 성경의 전체 진리(the whole truth)를 다 소유할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모든 진리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성령 안에서, 공동체내의 상호 자극과 도움가운데서 그리고 역사적 기독교의 신학적 유산 아래에서 성경의 충만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최근 본문중심의 문학적 해석 가운데 수사학적 해석방법(rhetorical criticism)은 본문에 나타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 방법에 따르면 성경 본문은 저자가 사회적이고 신학적인 특별한 문제들에 처해 있는 청중을 올바른 신앙으로 교도하기 위해 기술한 것으로 이것은 본문의 수사학적 구조분석(rhetorical analysis)을 통해 청중의 수사학적 상황(rhetorical situation)을 간파하여 그것에 대한 저자의 의도(authorial intention)를 파악하는 해석적 방법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수사학(rhetoric)은 에토스(ethos), 로고스(logos), 그리고 파토스(pathos)의 세 가지 요소들을 고려하는데 에토스(ethos)는 저자나 화자의 정체성과 정신을 말하고, 로고스(logos)는 기록된 것이든 발설된 것이든 간에 전달된 본문(text)을 말하며, 파토스(pathos)는 청중의 상황과 그에 따른 효과를 말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좋은 수사학적 해석 방법도 결국 해석자가 성경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해석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을 단순히 인간 저자(특정 종교집단)의 수사학적 혹은 이념적 산물로만 이해할 경우 우리는 성경의 근본 요구(딤후 3:16)에서 벗어나게 되고 복음은 드러날 수 없다. 성경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이해의 우선성은 앞에서 본대로 왜 초대교회가 알레고리적인 해석을 표준 해석으로 채택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와 정당성을 어느 정도 깨닫게 해준다.

 

지금까지의 성경해석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해석의 권위의 지속적인 이전(移轉) 과정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전통과 교회’의 권위(초대에서 중세)에서 ‘성경’의 권위(종교 개혁)로 이전되었고, 이어서 이것은 ‘인간 이성’의 권위(계몽주의)로 나아가고 있음을 간파하게 된다. 지금까지 이러한 해석적 권위의 이전(移轉)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에 대한 중요성과 함께 교회와 교리의 순기능과 역기능, 그리고 이성과 비평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주지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성경(정경)과 교회(교리)와 비평(이성)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여 성경해석에서의 이들이 가진 상호 역할과 상관관계를 적절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함을 배우게 된다. 이제 우리는 최근의 해석적 동향인 후기-현대주의의 해석을 살펴보면서 인간 이성 혹은 비평이 가진 한계와 역할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라. 후기-현대주의적인 해석: 독자반응 비평과 상황에 강조를 둔 윤리적 해석들

‘후기-현대주의’(post-modernism)의 해석은 저자의 의도나 본문의 의도보다는 독자와 상황에 대한 강조를 가진 해석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상황은 본문이 형성되었던 그 상황이 아니라 오늘의 상황 즉 ‘본문이 [지금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what it means)에 대한 상황을 의미한다. 이 상황을 우리는 ‘여기, 지금의 상황’(here & now context)이라고도 부른다. 상황을 강조하는 해석적 경향은 그 동안 성경해석이 본문이 형성되어 왔던 본문의 지시적 세계 즉, ‘본문 배후의 세계’(the world behind the text)나 ‘본문 자체의 세계’(the world of/in the text)의 의미(소위 객관적 의미: what it meant)만을 추구하고 주변의 기존 현실적 상황에 대한 문제들(인종차별; 빈곤과 기아; 전쟁; 압제와 독재; 부패와 불의; 경제적 착취; 인권 유린 등)을 도외시하는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계몽주의적/객관주의적 진리 탐구방법에 대한 식상과 반동으로 일어난 제 3세계 주도의 해석 방법으로서 ‘상황적 해석’ 또는 ‘윤리적 해석’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러한 해석 방법들을 넓게는 ‘독자반응 비평’(reader- response criticism)의 카테고리 안에 넣을 수 있다. 물론 해체주의적 해석(de-construction)도 이 부류에 속한다. 그리고 해방신학, 흑인신학, 민중 신학, 여성신학, 문화비평, 그리고 후기-식민주의 비평 등의 방법들도 이러한 해석적 부류에 속한다.

 

이와 같은 해석방법은 그동안 제도적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부조리한 제반 현실 사회문제들을 외면하거나 동조하면서 개인 구원과 교회 성장(물질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계층적인 분리의 형태를 띰)에만 집중함으로써 되어진 것에 대한 반발로 이들의 해석적 틀은 ‘성경 본문 자체’(신비평 혹은 구조주의)나 ‘성경의 객관적인 사실성의 추구’(역사비평)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부조리한 사회에서 당하는 억압과 차별과 착취와 유린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성경의 권위를 포함한 기존의 것들을 철저히 의심하고 비평함으로써 해석의 지평을 넓히는 방법으로 이러한 해석방법은 ‘의심의 해석학’(hermeneutics of suspicion)에서 더 나아가 ‘해석학에 대한 의심’(suspicion of herme- neutics)에 까지 이른다. ‘후기-현대주의의 해석’의 배후에는 인식론(epistemology)에서 존재론(ontology),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ideology) 혹은 수사학(rhetoric)으로 전이한 철학적 해석학이 있지만 이러한 해석적 동향은 절대적 진리란 없고-혹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재건하기란 불가능하며-오직 ‘일리(一理)의 해석학’만을 추구하는 상대주의적 해석을 추구한다.

 

후기-현대주의의 해석은 자유와 자율과 객관과 중립을 추구하는 주체로서의 ‘근대적 자아’(modern self)란 하나의 이상(理想) 혹은 허구(虛構)에 불과하고 주관성과 임의성과 부분성과 경사성과 역사성과 이념성을 가진 ‘포스트모던 자아’(post-modern self)가 그 중심이 서있다. 그러므로 후기-현대주의적인 해석이란 그 자체가 철저히 ‘작의적인 해석’(eisegesis)이다. 이 해석은 본문 자체의 의미(권위)나 저자의 의미(권위)를 인정치 않고 오직 해석자 혹은 독자가 창출하는 의미만을 주장한다. 사실 ‘근대적 자아’와 ‘포스트모던 자아’는 상호 대치되는 것처럼 보이나 존재론적으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내재하고 공존하는데 이것은 진리 추구와 권력 추구 사이에 끼어 갈등하면서 ‘자기 파멸적이고 자기모순적인 본질을 가진 자아’로 나타나 때론 나르시스적이고 때론 정신분열적이고 권력 조작적이거나 폭력적인 형태를 취하는 우주적인 회의주의(scepticism)와 냉소주의(cynicism)로 나아간다.

 

이 경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혹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 혹은 특정 시대의 ‘역사적 문서’이거나 특정집단 혹은 저자의 ‘이념적 문서’로 이해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해석 방법들이 취하고 있는 극단적이고 좌경적인 그리고 반 신앙적인 형태를 경계를 해야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해석적 경향은 결국 해석자의 존재론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위치, 그리고 윤리적 책임의 중요성을 보다 깊이 있게 상기시켜 준다. 여기에 해석에 있어서 전제 혹은 선이해의 문제와 함께 인간 비평의 본질에 대한 문제와 비평의 역할 혹은 기능의 문제가 대두된다. 이점에 있어서 최근 ‘해석(학)의 윤리’에 대한 학자들의 논의는 학계의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 결국 성경해석은 단순히 학문적인 면(비평적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이고 신학적이며 또한 윤리적이고 영적인 작업임이 분명하다.

 

 

3. 나가는 말

 

결론적으로 성경해석은 철저히 성경의 권위 하에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교회 혹은 교리의 적절한 역할과 비평의 건전한 역할 속에 진행되어야 한다. 특별히 이들 상호간 건강한 긴장 가운데 각각 그 역할들을 다할 때에 올바른 성경해석이 시행될 수 있다. 여기에 성경과 교회와의 관계는 성경해석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물론 성경 자체(sola scriptura)가 해석에 있어서 절대적이고 최고의 권위를 가지지만(종교개혁), 교회(교리/전통) 역시도 성경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과 권위수행을 한다(초대교회). 이 둘은 상호관계 속에서 나선적인 운동을 한다. 즉, 교회가 성경적 진리를 사수하고 신앙을 보호하며 성경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면, 성경은 ‘교회를 지속적으로 개혁하는데’(ecclesia reformata et semper reformanda) 그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에 기초한 올바른 교리는 신자를 바른 신앙으로 인도할 뿐 아니라 정통과 이단을 구별하는 잣대로서의 기능과 성경적 진리를 사수/보호/보존하는 ‘해석적인 울타리’로서의 기능을 한다. 물론 해석자는 교회(교리)의 권위 수행에 있어서 오용과 남용(역기능)을 경계해야 하며(중세교회) 그러기 위해서 성경해석에 있어서 건전한 비평의 역할이 유지되어야 한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비평이란 본문에 대한 서술적인(descriptive) 연구로서 본문에 던지는 질문들을 분석, 설명, 요약하는 인식론적 문제(지식의 문제)에 해당되기도 하지만(계몽주의와 역사비평) 또한 이것은 ‘역사상의 인간’(Dasein)으로서의 해석자의 선이해(preunderstanding)와 관련된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인 권력과 특권의 문제이기도하다(post-modernism과 해석의 윤리). 그러므로 성경해석에 있어서 비평의 사용은 종교개혁에서 보아온 대로 성경의 권위에 기초한 건전한 학문성(scholarship)과 함께 신학(theology)과 영성(spirituality)의 빛 아래에서 시행되어져야 함을 배우게 된다. 결론적으로 성경해석 역사에 나타난 성경, 교회 그리고 비평의 역할과 그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는 우리에게 건강한 해석적 원리와 방향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석의 윤리적인 책무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던져준다. 올바른 성경해석은 역사적 정통기독교가 고수해온 ‘성경의 권위’와 ‘신앙의 규범’에 기초한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의 중요성을 고려함과 동시에 해석자(인간)의 죄성과 연약과 한계를 바로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역을 통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지만 여전히 죄인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 있는 존재(being in Christ/Spirit)이지만 또한 역사 가운데 있는 존재(Dasein[being in history])이다. 그러므로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바로 전하기 위해 어떤 명분에서든 간에 우리 자신을 절대화하지 않고, 성령의 도움 가운데 우리 자신을 철저히 진리 안에 노출하여 ‘창조된 인간’으로서 모습을 가져야 한다(계 4:10- 11). 그리고 유일한 절대 권위인 하나님과 그의 말씀만이 우리를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겸허하게 우리 자신을 비워야 한다. 이점은 성경 해석과 실행의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빙자하여 우리 자신을 높이거나 다른 사람들을 압제하고 조종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Abstract

 

The Roles of the Bible, the Church, and the Criticism in Biblical Interpretation

-in the Light of the History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Ezra Sang Beop Shim

(ChongShin University)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understand the roles of the Bible, the church and the criticism in reference to biblical interpretation through the history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First and foremost one must take on the interpretative task of gaining an understanding of the nature of the Bible as God's Word in addition to the nature of its interpreter as Dasein. With such fundamental understanding as the basis of my argument, I will discuss by dividing the histo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into four periods, together with the method of interpretation that represents each period and each method's governing authority. Briefly speaking, the four periods can be divided into the period from the early church to the Medieval, the period of Reformation to German pietism, the period of modernism, and lastly the period of post-modernism. The period from the early church up to the Medieval mainly deals with allegorical interpretation as the standard interpretation where as the second period uses grammatical-historical interpretation as the standard interpretation. Thirdly, the modernism period, historical criticism is used as the standard interpretation and post-modern interpretation is the standard interpretation method for the fourth period. Additionally the church or dogma can be seen as the first period's governing authority where as the Bible is the governing authority of the second period. The third and fourth period have both reason as it's governing authority, except that the fourth period has post-modern reason as it's governing authority.

Ultimately the Bible has the absolute and final authority in biblical interpretation, however as seen throughout the Reformation, church as well as criticism also plays an important role for fair biblical interpretation, when it is used in a proper way. The Bible and church have a helical relationship in which a genuine church protects and defends our faith and biblical truth, and God's word, the Bible, contributes continuously to the reformation of church. Sound dogma not only guides a believer to true faith but also serves as a measuring stick that distinguishes heresy and orthodox as well as becoming a ‘hermeneutical fence’ that defends, protects and maintains biblical truth. In understanding the roles of the church and the reason or criticism in biblical hermeneutics, understanding the interpretative presupposition of the interpreter(interpreter as Dasein) is inevitable (Bultmann and post-modernism). Therefore, criticism or reason in biblical interpretation should be practiced strictly on the basis of sound theology, ethic, and spirituality.

 

 

 

 

 

 

 

 

 

 

 

 

 

 

 

 

 

 

 

 

 

 

 

 

 

 

주제어:

성경해석, 성경, 교회, 비평, 선이해, 포스트모던 자아

biblical interpretation, Bible, church, criticism, preunderstanding or Dasein, post-modern 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