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신학/the Pauline Epistles(바울서신)

유대 지역의 유대 기독교

משׁה 2014. 11. 11. 00:06

래리 허타도의 "주 예수 그리스도" 제3장을 요약한 것이다.

허타도 주 예수 그리스도 3장.hwp

 

 

3장 유대 지역의 유대 기독교

 

 

서론

 

바울이 섬겼던 교회들에 나타난 믿음들과 섬김 행위들의 패턴이 일찍부터 확고한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점은 우리에게 중요한 역사적 질문을 제시한다.

 

예수 섬김의 패턴이 어떻게 그리고 왜 그토록 일찍부터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는가?

바울이 섬겼던 교회들의 그리스도-섬김 그리고 바울의 회심자들보다 앞서 그리스도를 믿은 이들로서 로마 시대 유대 땅에 살았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런 바울이 섬겼던 교회의 신앙과 관행들은 그들보다 앞서 믿음 집단들과 비교해서 결별한 것인가? 아니면 양자 사이에 상당한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가?

로마 시대 유대 지역에 있었던 그리스도인 집단들의 그리스도-섬김에는 다양성이 존재했을까? 존재했다면 그 다양성은 어떤 유형이었을까?

 

바울이 섬겼던 교회보다 일찍 존재했던 공동체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되는 것은 바울 서신이다. 왜냐하면 역사 자료 중에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 그룹들이 믿었던 것들과 실제 행했던 관행들이 다양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서신 속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바울의 글에 나타난 증거

 

바울은 유대계 그리스도인 집단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바울 자신이 이 집단들과 가졌던 믿음들과 실제 신앙 관행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기회를 풍성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자신이 섬기던 회중들과 이런 유대계 그리스도인 집단들 사이의 연대 의식을 북돋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1) 바울은 유대교를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기록된 갈라디아서에는 초기 기독교 운동의 흐름이 잘 나타나 있다.

 

허타도는, 갈라디아서 1:22~2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바울이 회심한 뒤에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지금 전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바울이 지금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갖고 있는 믿음들과 행하는 섬김 행위가 이전에 그가 박해했던 유대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그것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2:14~16에서 그들이 핍박당할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과 연결지어 생각한다. 바울이 굳이 유대 지방의 교회들을 언급하고 있을까? 자신이 전했던 공동체가 있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유대 교회를 지목했을까? 이런 이유로 허타도는 유대 땅의 신자들과 바울이 회심케한 신자들이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로 지칭한다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1~2장을 보면, 바울과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좋은 관계가 나타난다. 바울은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지도자들로, 그리고 기둥들로 불렸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바울의 견해를 반대하는 자들을 거짓 형제들로 묘사한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 : 이 사건은 예루살렘 교회와 맺은 유대가 바울에게 지극히 중요했음을 강렬하게 시사하는 사건이다. 연보 사건을 고려하지 않을 채 이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2:10, 고전16:1~4, 고후8~9, 15:25~27). 물론 이 연보로 인하여 바울을 비방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연보 걷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연보를 전달하는 일이 바울에게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알 수 있다.

 

로마서 15:27에서 이방인 회심자들이 유대계 신자들과 똑같은 영적인 것을 나눠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린도후서 9:13~15에서는 고린도 교회가 연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을 보여 주었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 연보를 받은 유대인들이 이방인 신자들을 완전한 동반자로 답례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즉 바울은 자기가 섬기던 신자들과 유대의 신자들이 서로 상대를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차이점들 :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차이점들이 있었다. 허타도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의 회심과 관련된 조건들 그리고 바울이 사도로서 정당성과 권위를 갖고 있는가의 여부인 것으로 보았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대체로 예수를 메시아로 믿으며 토라를 전통을 따라 계속 지키는 것이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일부 유대인들은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는 믿음과 더하여 토라를 완전히 지킬 것을 요구했다. 그래야 식사 교제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허타도는 바울과 다른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벌어진 다툼들을 두 가지로 강조했다. 첫째, 바울은 유대 땅에 근거지를 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반대 의견을 주저 없이 표명했다. 둘째, 바울과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기독론과 관련된 문제들에서는 증거가 두드러지게 결여되었다고 말한다.

 

(2) 두드러진 침묵

 

허타도는 그리스도-섬김에 관한 어떤 상당한 이견들에 대해서도 바울서신이 침묵한다는 점은 두르러지고도 두루 퍼져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섬김에 대한 변호하는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바울은 특히 기독론 문제들과 관련하여 그의 관점과 다른 어떤 갈등이 있음을 전해 시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 유대계 그리스인들 쪽에서 문제들을 제기한 흔적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허타도는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을 이방인의 회심 조건과 관련된 것이지, 예수에 관한 반대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3) 바울 서신에 나타난 유대 기독교 전승

 

허타도는 그리스도-섬김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바울 서신을 깊이 보고자 한다. 이방인 교회들보다 앞서 존재한 그리스도인 집단들로부터 뿌리를 인정하고 이들과 바울이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부활 : 고린도전서 15:1~7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 부활의 증인역할을 한 사람들, 게바, 야고보가 나온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이 이 전승을 자신으로부터 받았으며, 바울 자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일찍 그 전승을 받았다는 점을 이야기 한다(15:1~3). 그런데 이 전승을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봐야 하는가? 허타도는 예루살렘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전승의 내용이다. 고린도전서15:3은 예수를 단순히 그리스도라 부른다. 이 고백이 표현하는 주장은 새로운 본질을 갖고 있다. 바로 그리스도/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이 죽음과 부활은 구속을 가져오며, 성경과 하나님의 목적을 완성하는 것이다.

 

성찬 : 고린도전서11:23~26에 예수님의 죽음이 구속을 가져왔다고 제시한다. 물론 이 전승과 예전 관행이 이전의 어떤 신자 집단들로부터 유래했다고 본다. 앞 장에서 부세트와 같은 사람은 그리스도-섬김의 현상을 헬레니즘에서 온 영향이라고 생각했었다. 성찬도 그렇게 볼 수 없는 이유는, 의식 관행 자체, 곧 신자들이 함께 예전 관행을 통해 예수를 기리는 거룩한 만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셈어 : 허타도는 마라나타와 같은 전통 문구를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았다. 마라나타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섬김 의식 생활에서 유래한 기도에서 사용된 공식문구일 수 있다. 그러므로 마라나타는 초기 섬김 관행이 남긴 작은 유산이다. 마라나타는 유대에 있던 유대계 그리스도인 집단에서 유래 되었다.

 

 

2. 사도행전에 나타난 유대 지역의 그리스도 섬김

 

사도행전에 나타난 유대 지역의 그리스도 섬김을 살펴보기에 앞서 제기되는 질문들이 있다. “유대 기독교에 관하여 언급하는 내용들을 대체로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허타도는 저자가 기록한 내러티브들을 저자 기록 목적을 고려하면서 읽어나가야 하고,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것이라고 말하는 기독론 용어들과 예수 섬김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관심사라고 말한다.

 

(1) 기독론과 관련된 개념 범주들

 

갈라디아서 2장을 보면, 이방인 선교는 바울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며, 데브로에게는 할례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말한다. 예루살렘 교회는 복음을 유대인들에게 전파함으로써 종말의 때에 이스라일이 확실히 구속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삼았다. 사도행전이 제시하는 예루살렘 교회이 설교도 이런 사명 및 목표와 일치한다.

 

: 퀴리오스라는 기독론적 칭호는 사도행전 전체에 걸쳐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헬라어를 사용하던 곳과 아람어를 사용하던 곳에서, 디아스포라 지역에 있던 신자들은 물론이며, 유대 땅에 있던 신자들 사이에서도, 예수를 로 부르는 일은 보통 있는 일이었다. 또한 유대인들은 퀴리오스를 신성사자음을 대신해 사용하였다.

 

환경과 역학 : 성경 본문들이 이해되어지고, “계시체험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확신에 빨리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섬김 패턴이 시작되었다.

 

구속을 가져온 예수님의 죽음 : 사도행전은 예수의 죽음이 이스라엘이 갖고 있던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수가 나무에 달리셨다고 언급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죽음을 묘사한 신명기 21장을 분명하게 시사한 것은,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감당하셨다고 이해했다.

 

다른 원시 별칭들 : 지도자, 창시자, 저자라는 아르케고스는 오직 기독론과 관련된 칭호로 나타고 있다.

 

기독론과 관련된 또 다른 말은 의로운/정의로운 자라는 말이다. 이 말은 사도행전에서도 오직 유대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나온 말들에서만 나타난다. 초기 기독교 그리스도인들이 이사야53:11과 하박국 2:4 같은 성경 본문들을 기독론과 관련지어 읽게 되면서 이 의인이라는 말이 예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다는 주장은 합리적이다.

 

사도행전이 유대 기독론를 언급하는 부분들 밖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기독론 용어가 종이나 소년/어린이를 뜻하는 파이스라는 단어는 기독록관 관련지어 사용될 때에는 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2) 섬김 관행

 

사도행전이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경건을 묘사한 전체 그림을 보면, 유대인들의 신앙 관행임을 인식할 수 있는 것과 그리스도인들의 섬김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새로운 특징들 몇 가지가 결합되어 있다.

 

성전과 예루살렘 : 사도행전에 묘사된 유대인의 경건에서 가장 두드러진 측면은 그들의 신앙 행위가 성전이라는 장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분명 성전을 거룩한 곳이요 경건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장소로 여긴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예수의 제자들은 성전을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뒤에 아주 빨리 등장한 기독론 주장들을 선포할 첫 번째 핵심 장소로 선택했는데, 이는 제자들이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를 특히 중요한 곳으로 여겼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이 유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름 : 사도행전에서는 예수 섬김을 직접 표현한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라는 말은 구약 성경의 용례에서 직접 유래한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이 말은 특히 야웨에게 드리는 기도와 희생 제사를 가리키는 전문적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사도행전이 예수를 부른다라고 언급한 부분들은 기독교 운동이 태동한 뒤 아주 이른 시기에 등장한 의식 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세례 때 사용된 예수의 이름 : 허타도는 세례 때 사용된 것에 큰 무게를 두고 있지는 않는다. 단지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며 기원하는 행위가 그 의식을 특징짓는 동시에 그 의식에 특별한 효력을 부여한다고 보았다고 생각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낼 때 사용된 예수의 이름 : 그 당시 이교도들과 유대인들도 마술 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있지만,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첫째, 로마 시대 마술에서 더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관행에는 기적으로 많은 능력 있는 이름들을 사용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집단은 유일하게 예수의 이름만을 부른다. 그리고 허타도는 유일신론과 연결 지어 말하기도 한다. 둘째로 예수 이름을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다른 섬김 관행들처럼,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을 때 예수의 이름을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인 집단들이 공인하고 집단 차원에서 공유한 섬김 관행의 일부였다.

 

(3)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인 헬라파

 

초기 유대 기독교 내부에 존재했던 다양성은 예루살렘 안에 있었던 헬라파신자들이다. 이 헬라파 신자들은 헬라어를 주된 언어로 사용하던 디아스포라 출신이다. “히브리파신자들은 팔레스타인/유대 출신으로, 이들은 주로 아람어를 사용했다.

 

"바울파의 원형인헬라파 : 마르틴 헹겔은 헬라파들이 히브리파신자들과 다른 신학적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헬라파가 예수와 바울을 이어주는 진정한 다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증거들을 거의 제시하지 않는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인 헬라파 : 허타도는 힐의 의견을 대신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예루살렘의 헬라파 신자들이 토라와 성전에 관하여 두드러지게 급진적인 견해를 발전시켰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헬라파라는 그룹이 그들만의 독특한 기독론을 갖고 있었다거나, 또는 그들이 이번 장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공경 관행들을 집단 차원에서 거부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히브리파헬라파는 기독론과 관련하여 비슷한 주장을 했으며, 비슷한 섬김 관행에 참여 했던 것으로 보았다.

 

 

3. 요약

 

허타도는 유대 기독교라고 정의한 기독교 운동 초기 유대에 거주했던 예수의 제자 집단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제자 집단들의 신앙과 관행이 남긴 메아리들, 그 중에서도 바울 서신이 보존해놓고 사도행전이 표현하는 것들을 살펴보았다.

 

바울을 통해 회심한 그리스도인들과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일치한다. 바울이 이방인 선교를 수행할 무렵에는 이런 예수 섬김이 아주 널리 퍼져 있었다. 때문에 바울 자신이 옹호했던 주요한 기독론 신조들과 섬김 관행들은 바울이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가 물려받은 전승을 전달했을 뿐이었다.

허타도 주 예수 그리스도 3장.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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