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글 : משׁה
1. 서론
신약성경에서 4복음서를 중심으로 양 날개가 있다면, 바울서신과 공동서신으로 나뉜다. 지금까지 바울서신과 복음서를 중심으로 한 신약신학 발전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그로인하여 학자들에 눈은 자연히 공동서신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 공동서신의 중심에 예수님의 친인척들을 중심으로 한 서신들과 히브리서가 있다. 이 논문에서는 3-4장을 중심으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히브리서 저자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전체적인 의미를 살펴보며 히브리서 저자가 원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그래서 먼저 수사학적인 기술방법과 독자들이 처한 상황 그리고 히브리서에 나타난 안식의 신학적의미를 고찰해 보고 안식에 나타난 종말론적인 의미를 살펴 보고자한다.
2. 히브리서와 수사학
히브리서는 신학적 논문을 보기보다는 배도와 다를바 없는 삶과 믿음의 흔들림으로 안식에서 벗어나고 있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급박한 호소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독자들이 생가가을 바꾸도록 설득하기 위하여 「수사학적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수사학의 시작은 B.C 5세기에 이미 그리스에서 싹트기 시작하였고, 웅변술은 그리스 사회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그레코-로망 사회에서는 교육이 행하여졌던 어느 곳에서든지 수사학이 사용되어졌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로마서보다 더 일관된 논증으로 되어 있고, 실제적인 목적이 히브리서의 수사학적 특성에 대한 설명이 된다. 히브리서 저자의 헬라어 문체는 신약성서에서 가장 뛰어나다. 그는 바울처럼 어느 정도의 헬라 교육을 받았으며 히브리서에서 자신의 관점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그에게 가용한 자원은 모두 사용하였다. 수사학이란 설득의 기술이며, 히브리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설득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3. 독자들의 상황
전통적인 견해는 히브리서가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는 위험에 처해 있는 일단의 유대인 회심자들에게 쓰여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처음의 열정을 잃어버리고 눈부신 예식으로 드려지는 성전 예배를 갈망하며 그들의 옛 유대교 전통들의 안전함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위에 확신하여 교회에 머물러 있으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F.F. Bruce의 견해는 오늘날에도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더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감에 있어 지쳐있었다(2:3, 4:1, 4:4, 12:23). 둘째로, 적극적으로 배교적인 삶에 빠졌으며(3:12, 4:11, 6:4, 6:5, 10:29, 12:15, 12:25), 마지막으로 외부로부터의 핍박이 있었다(2:10-12, 10:32, 10:33, 12:4). 이렇게 살펴보면, 배교에 대한 내용이 많음을 보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히브리서 독자들에 삶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믿음에 대한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히브리서에서 믿음이란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의 내용, 즉 내가 무엇을 믿는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과 일치하는 삶에서의 충성심, 즉 내가 믿는 자로서 무엇을 행하는가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안식의 신학적 의미
구약성경에서 안식이란 의미는 여러 뜻을 나타낸다. (1)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다(창2:2-2). (2) 안식일의 안식과(출20:210) (3) 약속의 땅에서 안전하게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소유하게 될 안식이다(출33:14). 만약 히브리서가 F.F. Bruce의 견해처럼 유대교 출신 독자들이라면, 안식이란 의미는 약속의 땅을 향해 가야할 출애굽 1세대들에게 향한 모세의 메시지(히3:3-19)처럼 히브리서의 독자들도 세상의 유혹과 핍박과 배교하는 삶을 떠나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를 영원한 안식으로 초청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세우기를 원한다.
|
유월절 |
오순(칠칠)절 |
초(장)막절 |
이스라엘 |
출애굽 |
십계명과 언약(율법)들 |
가나안 |
히브리서 독자 |
십자가로 구원 |
성령 |
안식 |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어 광야에서 죽은 1세대들이 아니라(히3장), 믿음으로 순종한 2세대들과 같이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잡아 안식에 들어갈 것을 호소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땅에서의 안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말한다. 그러므로 불순종이 아니라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며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마음과 생각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살피며 순종하라는 것이다(히4:10-13).
그리고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것을 말하고 있다(히4:14). 이스라엘 민족은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시온소에 피를 부으면서 일시적인 죄 씻음을 주었다면, 이제는 모세보다 뛰어나시며 영원한 안식으로 초청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을 것을 호소한다. 거기에 진정한 안식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5. 안식의 종말론적 의미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 종말론은 어느 한 부분이나 구석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메시지에 일관하여 흐르고 있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마지막 부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소망이며 앞을 바라보며 앞을 향해 움직인다. 그러므로 현재를 혁신하고 변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종말론은 단순히 기독교 교리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없다. 히브리서도 예외는 아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 묵시적인 종말론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초림 하심으로 이미 성취됨(already fulfilled)과 아직 완성되지 아니하였다(not-yet). 히브리서 기자도 영원한 안식의 시작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믿음-그리스도인다운 삶-으로 살아가며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와라고 초청하고 있다.
6. 결론
히브리서 기자는 미혹과 어려움이 처한 독자들에게 수사학적 기법으로 잠자는 믿음을 깨워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것을 호소하고 있다. 조국교회에 필요한 메시지라 생각한다. 교회와 사람들은 저마다 지상왕국을 꿈꾸고 있다. 이 땅에서 부자가 되고 긍정적으로 살면서 안식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는 상관없이 방종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영원한 안식으로의 초대’가 조국교회 위에도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신약신학 > New Testament (신약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약성경 시대의 유대교 (0) | 2009.09.01 |
---|---|
오천 명을 먹이신 광야의 급식 이적(성서사랑방 ) (0) | 2009.08.11 |
주의 날(The Lord's Day)에 대한 연구 (0) | 2009.07.17 |
마가복음의 제자도-기독론에 비추어서 목회가이드, 41 (0) | 2009.07.14 |
예루살렘 성전파과와 새로운 교회시대의 열림 (0) | 2009.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