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신학/Luke-Acts (누가-행전)

누가복음에 사용된 현재 분사의 이해와 번역

משׁה 2009. 10. 13. 18:30

누가복음에 사용된 현재 분사의 이해와 번역

 

정 창 욱 (총신대학교)

 

1. 서론

 

다른 시제의 분사와 마찬가지로 현재 분사도 세 가지 용법으로 사용된다: 형용적 용법, 보완적 용법, 서술적 용법. 이 가운데 앞의 첫번째 용법의 이해는 비교적 수월하여서, 대부분의 경우 현재 분사는 ‘~하는’ 혹은 ‘하고 있는’으로 번역하면 무난하다. 하지만, 이 용법에서도 한 가지 논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경우에 현재분사가 미래를 나타내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두 번째 용법에서는 현재 분사가 주동사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번역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다. 그런데 더 복잡한 문제는 서술적 용법에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초급 성경 희랍어 문법서에 따르면, 현재 분사는 주동사와 동시적 행동이나 그 보다 늦은 동작을 나타내며 반면에 과거분사는 주동사 보다 앞선 동작을 표현해 준다. 그 결과 현재 분사를 ‘...할 때’ 혹은 ‘...하는 동안’으로 번역한다.

 

이러한 이해와 그에 따른 번역은 어느 정도는 정당한 것이나,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로, 헬라어의 시제는 직설법을 제외하고는 시간관계를 나타내기 보다는 시상(aspect)를 나타낸다. 희랍어의 시제는 기본적으로 동작의 종류나 시상을 나타내 주지 시간 관계를 나타내 주지 않으므로, 분사의 시제에 대한 위의 명제는 희랍어 시제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오해는 성경 번역에 그대로 반영되어서 기계적으로 현재분사를 번역하거나, 현재분사의 시상에 대한 고려없이 문맥에 맞추어 번역되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그 결과 희랍어의 현재 분사가 표현하고자 했던 생생한 측면은 사라지고 밋밋한 문장으로 번역되어 버리곤 한다. 둘째, 현재분사가 언제나 주동사보다 늦거나 동시적 동작을 나타내 주지는 않는다. 현재 분사가 주동사 보다 앞선 동작을 나타내 주는 예가 신약 성경에도 적잖게 등장한다. 현재 분사가 주동사와 동시적 동작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헬라어 현재의 상(aspect)이 진행을 나타내 주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이지, 현재시제 자체가 그런 측면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현재 분사의 서술적 용법을 단순히 시간 관계에 집중해서 보게되면 ‘~하는 동안’으로 번역하게 되는데, 이것은 본문의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해 주지 못하게 만든다. 서술적 용법은 시간외에도 이유, 원인, 양보, 조건, 목적으로 다양하게 번역될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본 논고에서는 현재분사의 올바른 이해와 번역을 위해 누가복음에 사용된 현재 분사의 예들을 살펴보아서 어떻게 한글 성경들에서 번역되었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나아가 어떠한 원칙을 제시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히 한국 교회의 공식 강단용 성경인 『개역 개정 성경』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한글 성경을 참고하고 비교할 것이며 각주에 차이점등이 기술될 것이다. 본 연구의 주된 목적은 각 예들에 대한 세밀하고 정밀한 번역을 제시하는데 있지 않고 각 예에서 현재 분사가 어떻게 이해되고 번역되어야 하는지 그 핵심내용을 제시하는 데 있으며, 더 나아가 현재 분사의 번역을 위한 대략적 원칙을 제시해 보는데 있다. 논의를 진행함에 있어서 누가복음 1장부터 순차적으로 다루는 것 보다 범주를 만들어서 그것에 따라 예들을 분류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용례들을 분류하여 연구하되 모든 예를 다루기보다는 특별한 관찰을 요구하는 예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완곡 구문: eivmi, 동사 + 현재분사

 

eivmi,와 함께 사용되는 현재분사는 현재분사만 사용되는 경우와 약간은 다른 의미를 전달해 준다. 이 구문이 그 독특성을 코이네 헬라어에서 많이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이 구문은 생생하게 진행형의 동작을 표현하는데 사용되기도 하는데 문맥 또한 이 측면을 지지해 줄 때 더욱 그렇다. 이것은 한글 성경에서 어떻게 번역되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2.1. eivmi,의 미완료 과거 + 현재 분사

 

4장 31절의 경우, NKJV과 NRSV는 과거 진행형으로 표현하여 진행성을 강조하는 반면에 한글 성경 중 어느 것도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 문맥상 이 부분은 ‘가르치고 계시더니’ 혹은 ‘가르치고 계셨다. 그런데...’로 번역해야 다음의 33절 이하의 사건과 잘 연결된다. 가르치고 계시는 중에 사람들이 그 말씀의 권위에 놀랐고 더불어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는 역사가 있었다. 36절의 사람들의 반응은 이 같은 해석을 뒤받침 해준다. 결론은 어떠한 말씀이기에 그와 같은 능력이 나타나느냐 하는 데 집중된다. 31절의 가르치시고 계시는 중에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똑같은 구문이 사용되는 4장 38절의 베드로의 장모에 대한 설명에서 한글 성경은 적합한 번역을 보여준다: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4장 44절의 경우에는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라는 단순한 표현을 썼는데 이 부분은 ‘전도 하고 계시더라’ 혹은 ‘계속 해서 전도하고 계시더라’로 하여 과거 진행형을 표현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4장 44절과 마찬가지로 5장16절에서도 『개역 개정 성경』은 eivmi, 동사의 미완료 과거와 현재 분사가 함께 사용된 원문의 의미를 잘 살려주지 못한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원문의 의미는 어떤 한 경우에 예수께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반복적으로 한 행동을 나타내 준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often'을 집어넣거나 아니면 과거의 반복적인 행동을 나타내 주는 ‘would'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예수는 물러 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곤 하셨다’로 번역해야 보다 바르게 본문의 의미를 나타내 줄 수 있다. 바로 다음 구절인 17절의 경우도 ‘가르치고 계실 때에,...앉아 있었는데’로 이해하면 보다 분명하게 의미가 전달된다. 5장 29절의 경우에 『개역 개정 성경』은 『개역 성경』의 ‘앉았는지라’를 ‘앉아 있는지라’라고 고쳐서 표현하여 원문을 그런대로 잘 번역해 주고 있다. 이것은 성경 번역에서 발전적 측면을 보여준다. 8장40절의 경우에는 eivmi, 동사와 현재 분사가 사용되었기에 ‘기다리고 있었다’로 번역함이 마땅하며, 9장 53절도 ‘향하여 가고 계셨기 때문에’로 번역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11장 14절의 경우에도 ‘쫒아내고 계셨다’로 하는 것이 좋다: ‘쫒아내고 계셨는데 귀신이 나간 후에(나가매)....’ 13장 10절에서도 과거 진행형으로 ‘가르치고 계시더니’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3장 11절의 경우에는 세 개의 현재 분사가 등장하며 하나는 따로 두개는 eivmi, 미완료 과거와 함께 사용된다. 처음 것은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으로 보고, 나머지 두개는 과거 진행형을 표현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허리가 구부러져 있어서 조금도 펴지 못하고 있었더니.’

 

14장 1절에 eivmi,의 미완료 과거와 현재 분사가 사용되는데 이것을 『개역 개정 성경』은 정확하게 ‘엿보고 있더라’로 번역한다. 13장22절에도 이렇게 해야 옳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15:1, 47; 23:8 47절에도 이 구문이 등장하는데 문맥상 진행의 의미를 살려주는 것이 타당하다.

 

24장 53절에는 eivmi,의 미완료 과거와 현재 분사가 등장하는데 이 구문의 해석은 한글 성경에서 다양하다: 개역 개정은 하나의 구문으로 보아서 ‘찬송하니라’로 번역하는 반면에, 새번역은 ‘찬양하면서 성전에서 지냈다’로 공동번역 개정판은 ‘찬미하며 지냈다’로 번역한다. 표준 새번역은 원래 ‘찬양하며 지냈다’로 했으나 의미를 약간 수정한다: ‘찬양하면서 날마다 성전에서 지냈다.’ 이것은 분사를 eivmi,동사와 독립된 것으로 번역한 것으로 동사와 같은 시간의 동작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 것이다. 21장 17절에는 eivmi,의 미래와 현재분사가 함께 등장하는데 이것은 미래로 해석해서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

 

2.2. eivmi,의 미래 + 현재분사

 

5장 10절의 경우에는 ‘eivmi,'의 미래와 현재 완료가 사용되었는데 영어 성경은 대부분 ‘will be catching men'으로 번역하여 본문의 의미를 반영해 준다: ‘너희가 사람을 (계속) 낚을 것이다.’ 한글 성경의 경우에도 ‘낚고 있을 것이다’로 보는 방법을 제안해 본다. 22장 69절에도 동일한 구문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개역 개정 성경』처럼 미래 진행으로 보아서 ‘앉아 있을 것이다’로 보아야한다. 다른 한글 성경보다 『개역 개정 성경』의 번역이 원문의 시상을 잘 전달해 준다.

 

이상에서 보듯이 개역 개정 성경은 eivmi, + 현재 분사 구문이 사용된 구절의 번역에서 문맥이 요구함에도 진행이나 지속적 시상을 표현하는데 소극적이다. 이 부분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3. 직접화법을 소개하는 현재 분사의 번역

직접 화법을 소개하기 위해 사용되는 le,gw의 현재 분사의 해석은 또 다른 번역 문제를 제공해 준다. 영어와는 달리 이것을 한글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1 le,gw분사의 다양한 번역

7장 6절과 19절에서 ‘보내어 이르되’로 번역된 부분은 누군가를 보내어 말하게 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헬라어 le,gwn의 번역으로 이것은 문맥에 따라서 ‘말하다’뿐만 아니라, ‘묻다’로 번역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의미를 (표준) 새번역과 공동 번역(개정판)은 반영하여 번역한다: ‘물어보게 혹은 묻게 하였다.’ 반면에 한글 개역(개정)은 ‘보내어 이르되~ 하게 하였다’로 번역한다. 이것은 아마도 직접 혹은 간접 인용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le,gwn을 기계적으로 ‘~하여 이르되’로 번역한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좀 더 유연한 번역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le,gwn의 의미를 ‘말하다’에 한정시키지 말고 문맥에 따라 ‘묻다’ ‘대답하다’ 혹은 ‘명령하다’ ‘주장하다,’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부르다’ (call, name)로 번역해야 한다. 이것은 le,gw동사의 사전적 의미에도 부합한다. 7장20절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개역 개정판은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여 중간의 le,gwn을 '여쭈어 보다’로 번역하여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하더이다 (개역 성경);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하더이다 하니. (개역 개정). 이 둘을 비교해 보면 개역 판 번역의 모호함이 잘 드러난다. 7장 39절의 경우는 legwn을 번역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똑같은 동사 le,gw의 과거형이 주동사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문맥과 문장 구성 요소 등이 번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13장 25절에서 『개역 개정 성경』은 단순하게 le,gontej를 ‘하면’으로 번역한 반면에 공동번역 개정판 등은 ‘(아무리-공동번역 개정판)졸라도’라고 하여 동사를 생동감 있게 번역하였다.

 

3.2 일반적 의미를 나타내는 le,gw 분사의 용법

17장 4절에서 직접화법을 이끄는 le,gw의 현재 분사가 사용되는데 이 구절에서 『개역 개정 성경』은 이 현재 분사를 직접화법의 내용 뒤에 놓는다. 이것은 문맥이 그렇게 통하기 때문인데, 이 곳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유연하게 번역해 볼 필요성이 있다.

22장 19절의 경우에도 직접화법을 이끄는 le,gwn이 등장하는데 문장 구조를 보면 19절 상반절에서 두개의 과거 분사가 과거 동사 앞에 등장하여 하나의 문장을 구성하며, 하반절에는 한개의 현재 분사가 등장하여 하나의 문장을 이룬다. 따라서 두 번째 문장에서 현재분사는 본동사와 연결되어 이해해야한다. 그래서 그 기본적 의미는 ‘....라고 말씀하시면서 주셨다’가 되어서, 상반절은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신 후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로 번역하면 가장 무난하다. 20절에도 유사한 구문이 등장하는데 다만 19절 상반절의 두 과거분사나 주동사 등이 없이 단지 직접화법을 이끄는 le,gwn만이 사용된다.

 

22장 59절의 예를 보면 미완료과거 후에 le,gwn이 사용되어서 말하면서 무언가를 하는 동작을 나타내 준다고 볼 수도 있다. 아니면 미완료 과거를 ‘시작하다’로 보아서 ‘말하며 장담하기 시작했다’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20장 5절과 14절에 서로 유사한 문장구조가 등장하는데, 5절에서는 ‘수군거리다’에 해당하는 미완료 과거가, 14절에는 유사한 동사인 ‘논의하다’의 과거 동사가 사용되며, le,gwntej가 직접화법을 이끌고 있다.

 

23장 21절에는 미완료 과거 동사 뒤에 legwntej가 등장하는데, 이 구절에서 미완료 과거와 현재 분사는 ‘계속 소리 질러 이르되’로 해석되어야 한다. 23장 36-37절에 과거동사(희롱하다) 뒤에 현재 분사 두 개와 직접화법을 이끄는 le,gwntej가 등장하는데 이 구문을 잘 이해하고 번역할 필요가 있다. 23장 34절에 le,gwntaj가 직접화법을 이끄는데 이것은 33절의 과거동사 eu`ron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열한 제자와 그들과 함께한 자들’을 받는 ‘모여 있는’에 해당하는 분사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 분사보다 늦은 동작을 나타낸다. 23장 34절에 le,gwntaj가 직접화법을 이끄는데 이것은 33절의 과거동사 eu`ron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열한 제자와 그들과 함께한 자들’을 받는 ‘모여 있는’에 해당하는 분사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 분사보다 늦은 동작을 나타낸다. 36절의 현재 분사 두개를 주동사에 귀속된 것으로 보아서 ‘군인들도 나아와 신포도주를 주며 희롱하며 (36절) 이르되.....(37절)’로 번역해야 정확하다. 39절에는 미완료 과거 동사 뒤에 le,gwn이 등장한다. 이것은 미완료 과거의 의미를 살리고 개역 개정판의 문체를 살려서 ‘계속 비방하여 이르되’로 번역하면 무난하다.

 

24장 23절에는 과거동사와 직접화법을 이끄는 le,gwntej가 함께 사용되는데 이것은 주동사 보다 늦은 동작 표현해 준다: ‘와서 말하기를.’

위의 논의에서 알 수 있는 사항은 두 가지다. 첫째, 직접 화법을 이끄는 le,gw의 현재분사의 번역에서 이 동사의 의미를 단순히 ‘이르되’로만 이해하기 보다는 다양하게 ‘묻다’ ‘대답하다’ ‘명령하다’ 등으로 번역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일률적으로 직접 화법 앞에 ‘이르되’등으로 번역하여 놓기 보다는 경우에 따라 직접 화법 뒤에 놓으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4. 현재분사의 위치와 의미

앞에서 다룬 le,gw의 현재 분사의 경우에도 잠깐 나타났지만, 분사의 위치에 따라 때로는 주동사와의 시간 관계가 드러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현재 분사는 주동사 뒤에 쓰이며 보통 주동사와 동시대 행동이나 그 이후의 동작을 나타내 준다. 그런데 현재 분사가 드물게 주동사 앞에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주동사 앞에 현재 분사가 쓰이면 주동사 보다 앞선 동작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물론, 문맥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4.1 주동사 앞에 쓰인 현재 분사

8장 8절의 경우에는 현재분사가 주동사 앞에 사용되었는데 (tau/ta le,gwn evfw,nei) 이 구절이 현재 분사의 위치와 관련하여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글 성경 중 표준 새 번역은 현재 분사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라고 번역하는 반면에 다른 성경들은 모두 ‘이 말씀을 하신 후에’라는 의미로 번역한다. 이 구절의 주 동사의 시제는 미완료 과거다. 이 미완료 과거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과거의 반복적 행동으로 해석하게 되면, 현재 분사의 의미도 분명해 진다. 이 경우에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도중에 ‘들을 귀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시작을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로 보면, 현재 분사는 주동사 보다 앞선 동작을 나타내 준다. 따라서 이 구절의 현재 분사는 주동사 보다 앞선 동작을 나타내 줄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이것들을 말씀하신 후에 외치기 시작하시길..... 현재 분사와 미완료 과거 동사를 함께 합쳐 놓으면 의미가 좀 더 분명해 진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에 이 부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중에 ‘들을 귀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9장 6절에 흥미로운 구문이 등장한다. 세 개의 현재 분사가 사용되는데 한 개는 주동사 앞에 두 개는 주동사 뒤에 쓰이며 이 문장의 주동사의 시제는 미완료 과거다. 이 구절에서 주동사 앞의 현재 분사는 주동사보다 앞선 동작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제자들이 나가서. 문제는 주동사 뒤의 두개의 현재 분사의 해석이다. 『개역 개정 성경』은 주동사와 현재 분사의 동작을 동시적인 것으로 제시한다: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이 번역은 기본적으로 본문의 의미를 충실하게 전달해 준다고 여겨진다. 다만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미완료 과거와 함께 사용된 현재 분사의 의미 해석이다. 미완료 과거 동사의 뒤에 따라 나오는 현재 분사의 의미를 한글로 전달해 줄 방법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번역을 제안해 본다: 제자들이 나가서 마을들을 두루 다니면서 곳곳마다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쳐주고 있었다 (혹은 고쳐주기 시작했다).

 

9장 39절 후반부의 개역(개정)성경의 번역은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 ‘몹시 상하게 하고야’는 현재분사의 용법에 전혀 맞지 않는데 이것은 이 구절에서 현재 분사가 주동사 뒤에 사용되어서 더욱 그렇다. ‘몹시 상하게 하면서 겨우 떠나갑니다’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면 ‘몹시 상하게 하면서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로 번역해야할 것이다.

 

11장 16절의 경우는 현재 분사가 미완료과거 주동사 앞에 등장하고 있는데 이 분사는 목적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장 24절의 현재 분사의 경우 『개역 개정 성경』을 비롯한 한글 성경의 번역은 어떠한 영어 성경보다도 원문의 의미를 충실히 반영한다. 이 분사는 주동사 앞에 사용되어서 주동사 보다 앞선 동작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이해하면 가장 자연스럽다. 30절의 현재 분사는 주동사보다 앞에 사용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모든 한글 성경은 ‘들어가면 (『개역 개정 성경』)’ 혹은 ‘들어가서 보면’ (표준 새번역, 공동번역 개정판)등으로 번역한다. 21장 37절의 경우에 미완료 과거와 함께 현재 분사가 사용되는데 흥미롭게도 현재분사가 주동사 앞에 쓰여서 주동사 보다 앞선 동작을 나타내 준다: 밤에는 나가서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지내곤 하셨다. 23장 34절에서 현재 분사가 과거동사 앞에 위치해 있는데 이것은 목적으로 해석하면 의미가 잘 통한다: ‘그의 옷을 나누기 위해 제비뽑더라.’ (NKJV).

 

4.2 주동사 뒤에 쓰인 현재분사

7장3절의 『개역 개정 성경』번역은 좋은 번역으로 주동사 뒤에 쓰인 현재 분사를 주동사보다 늦은 동작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번역하였다: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아니면 이 분사는 목적으로 해석하여 ‘청하기 위해 보냈다’로 표현해도 무방하다. 6절에서 또 다시 현재 분사가 등장하는데 그 주어는 다시 한번 백부장이다.

 

간청을 하는 주체가 3절과 마찬가지로 6절에서도 백부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때에도 두 가지로 번역이 가능하다: 1) 시간: '~와 같이 그에게 말하며 친구들을 보냈다'; 2) 목적: '~와 같이 말하도록 친구들을 보냈다.' 한글 개역 (개정)의 번역은 인용구의 주체를 조금 애매하게 만든다: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이는 마치 백부장이 예수님께 직접 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혼란을 피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분사를 목적으로 번역하는 것이나 원문과는 차이가 있어서 『개역 개정 성경』처럼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8장 25절의 경우에는 현재 분사가 주동사 뒤에 위치하여 주동사 보다 늦은 동작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개역 개정 성경』의 번역은 이에 적합하다. 8장 29절의 경우에는 현재 분사가 미완료 과거 주동사 뒤에 사용되어서 8장 8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반복적인 동작을 나타내 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본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함이 온당하다: ‘귀신이 자주 (오랜 기간동안) 그 사람이 귀신에 잡혀있었으며,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켜왔으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 몰려 광야로 나가곤 했다.' 이 부분에서 현재 분사는 미완료 과거 동사와 더불어서 과거의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번역되어야 한다.

 

10장 25절의 경우에 두개의 현재 분사가 주동사(단순과거)뒤에 사용되는데 두 번째 현재분사는 직접화법을 소개하는 것이기에 특별하지 않다. 문제는 첫 번째 현재 분사인데 이것을 단순히 주동사의 동작 이후로 볼 것인지 아니면 목적을 나타내 주는 분사로 볼 것인지가 문제다. 둘 사이에 커다란 의미의 차이는 없으나, 시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경우의 밋밋함 보다는 목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역동성이 있어 보인다: '예수를 시험하려고 일어나서 이르되.' 목적으로 해석하면 율법사의 의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34절에서 또다시 주동사 다음에 현재 분사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을 ‘붓고 싸매고’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문법적으로 볼 때 이곳의 현재 분사는 주동사보다 앞선 동작을 나타내 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이 곳의 그림은 포도주와 기름을 부으며 상처들을 싸매어 주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상처가 여러 개 있기에 한 군데씩 포도주와 기름을 부으며 상처들을 싸매어 주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구절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 할 수도 있다: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들에 부으면서 싸매주고.’ 하지만 한글의 특성상 ‘붓고’로 하는 것도 가능하다.

 

13장 6절의 ‘구하였으나’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현재 분사인데 단순과거 동사 뒤에 나와서 주동사보다 늦은 동작을 나타내준다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다른 가능성은 현재 분사를 목적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열매를 찾아보기위해 왔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NIV, NJB, NLT).

 

13장 22절의 두 현재 분사는 9장6절과 유사하게 die,rcomai의 미완료과거인 주동사 뒤에 나온다. 『개역 개정 성경』의 번역은 대체로 무난하다고 볼 수 있으며, 다만 9장 6절에서와 같이 미완료 과거 동사의 의미를 좀 더 살릴 필요성이 있고, 누가복음에서 강조되는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시면서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고 계시더니 (여행하시는 중에).'

 

15장 5절의 경우에 현재 분사가 주동사 뒤에 나타나는데 이것을 주동사보다 늦은 것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찾으면, 자기 어깨에 메고 기뻐하며.' 물론 의미상의 차이는 별로 없다. 15절에는 4절에서와 유사한 구문이 등장하는데 4절에서와는 달리 이곳에서 『개역 개정 성경』은 현재 분사를 주동사와 동시적인 동작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번역한다. 모든 한글 성경이 그렇게 이해한다. 이것을 ‘돌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로 번역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에 16절의 내용 곧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하니’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수님께 엎드리는’것으로 직결된다. 그리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이 예수께 돌아와서 한 일로 해석된다. 나음을 받고 소리지르며 영광을 돌리며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님께 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발 앞에 엎드리는 그림이다. 15장 25절의 경우에 현재 분사가 주동사보다 앞에 위치해 있는데, 『개역 개정 성경』의 ‘돌아와’라는 번역은 원문의 현재 분사의 시상을 표현해 주지도 못하고 문맥에도 어색하다. ‘그가 돌아오다가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로 번역하면 좋을 듯하다.

 

17장 16절에도 동일한 구문 곧 주동사 + 현재분사가 등장하는데 『개역 개정 성경』을 비롯한 모든 한글 성경은 이번에는 현재 분사를 주동사 다음 동작으로 이해한다: ‘엎드리어 감사하니.’ 15절처럼 하자면 ‘감사하며 엎드리니’로 해야 마땅하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15절의 내용도 위에서 제시한 대로 순차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옳다. 18장 35절의 경우에 주동사 뒤에 현재 분사가 나오는데 미완료 과거인 주동사를 현재 분사와 연결하여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구걸하며 앉아 있다가’로 번역하면 더 좋을 듯하다.

 

18장 43절에 17장15절과 동일한 동사의 분사 (doxa,zw)가 동일하게 미완료인 주동사 뒤에 사용되는데 『개역 개정 성경』은 17장에서와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로 번역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예수를 따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더니’ 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19장 6절의 경우에는 과거 주동사 뒤에 현재 분사가 사용되었는데 ‘즐거워하다’에 해당하는 cai,rw가 등장한다. 이것을 『개역 개정 성경』은 주동사와 동시간대의 사건으로 본다. 이 문맥에서 이 해석은 합당해 보이는데, 이는 17장 15절의 이해와는 약간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약간의 뉘앙스가 있다. 삭개오가 즐거워하는 모습과 다음 구절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이 대조하기 위해 현재 분사를 주동사 뒤에 놓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삭개오의 기쁨과 사람들의 불평이 서로 대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급히 내려와 영접하며 즐거워하거늘, 뭇사람들이 보고 수근 거려 이르되....'

 

19장 28절에는 13장 22절에 사용된 표현이 등장하는데 미완료 과거 주동사를 중심으로 앞에는 과거 분사가 뒤에는 현재 분사가 사용된다: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 가시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셨다.’ 『개역 개정 성경』은 13장 22절에서는 그렇게 이해하였으나, 이 구절에서는 예루살렘을 올라가시는 모습을 ‘앞장 서서 가시는’ 동작과 하나로 묶어놓았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시는 광경을 어떻게 강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13장 22절과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22장 30절에 주동사 뒤에 등장하는 현재 분사는 『개역 개정 성경』처럼 번역할 수도 있으나 목적으로 보아서 ‘너희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기 위해 보좌에 앉을 것이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 22장 43절의 경우 과거 주동사 뒤에 현재 분사가 사용되었는데 이 경우에는 주동사 보다 늦은 동작을 나타낸다: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여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22장 63절에 미완료과거 주동사 뒤에 현재 분사가 등장하는데 동시적 행동을 나타내 준다: '때리며 조롱하고 있었고.' 65절에는 현재 분사 뒤에 미완료 과거가 사용되는데 이 경우에는 현재 분사를 먼저 따로 해석하고 주동사를 해석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많은 다른 것들로 모욕하면서 그를 대적하고 있었다.’

 

이상의 관찰을 정리해 보면, 1) 현재 분사는 주동사 앞에 쓰이면 주동사 보다 앞선 동작을 나타내 줄 가능성이 높다; 2) 현재 분사는 주동사 보다 앞에 놓이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그 위치에 상관없이 보다 자주 목적으로 해석하면 원문의 의미가 잘 통할 수 있다; 3) 현재 분사는 주동사 뒤에 나올 경우에 주동사 보다 늦은 동작을 표현할 수 있다.

 

5. 보완적 용법의 분사 (Supplementary Participle)

보완해 주는 분사 용법은 지각동사 (보다, 듣다, 느끼다 등)와 함께 사용되는 분사를 가리키며, 이 때 분사는 주동사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고 번역되어야 한다.

 

12장37절에는 보완적 용법의 분사가 등장하는데 ‘깨어있는 것을 보면’은 좋은 번역이다. ‘깨어있다’는 동사의 특성상 그런 것처럼 보인다. 43절에도 보완적 용법의 분사가 등장하는데 이곳에서는 ‘하고 있는 것을’이 아니라 ‘하는 것을’로 번역한다. (『개역 개정 성경』) 다른 성경들은 보완적 분사를 번역하지 않고 다르게 번역하는데 이것은 한글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그렇게 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번역을 제시해 본다: '주인이 와서 그 종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 종은 복이 있다.'

 

12장 55절에서는 주동사가 생략되어 있는데 이것은 54절에서 주동사가 이미 분명하게 명시되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54절과 동일하게 보완적 분사를 형성한다: ‘남풍이 불고 있는 것을 볼 때에’. - 일반서술로 볼 것인지 아니면 현재진행형으로 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일반서술로 볼 수 있다.

 

13장 28절의 경우는 ‘오직’은 불필요해 보이며, 현재 분사는 한글의 특성을 살려서 헬라어의 원의미를 반영하여 ‘쫒겨나는 것을’로 하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보완적 분사의 해석문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쫒겨나는 것을 볼 때에.' 21장 20절의 보완적 분사는 ‘둘러싸이는 것을’이 무난하다. 27절에 또다시 보완적 분사가 사용되는데 ‘오는 것’이라는 번역은 원문을 잘 반영해 준다. 31절에 보완적 분사도 『개역 개정 성경』처럼 ‘일어나는 것을’로 하면 무난하다.

 

『개역 개정 성경』을 제외한 한글 성경의 22장 45절에 대한 이해는 흥미롭다. 과거 주동사 뒤에 사용된 현재 분사를 주동사보다 늦은 동작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와서 보시니..... 잠들어 있었다. 의미상의 차이는 별로 없지만 여기에 사용된 보완적 분사는 『개역 개정 성경』처럼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다만 동사의 의미를 현재 분사의 의미를 살려서 ‘잠든 것’으로 하기 보다는 ‘자는 것’으로 할 필요가 있다. 22장 56절의 경우에 ‘앉은’(『개역 개정 성경』) 보다는 ‘앉아있는’(표준 새번역 등)으로 하는 것이 더 생동감을 준다.

 

보완적 용법의 분사구문은 커다란 문제를 야기시키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 분사의 진행의 의미를 잘 살려서 번역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6. 독립소유격 분사구문의 해석

 

독립소유격 분사구문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분사 시제의 기능이 잘 적용된다. 그래서 현재 분사는 주동사와 동시적 동작을, 과거 분사의 경우에는 주동사 보다 앞선 동작을 나타내 준다.

 

8장 4절에 등장하는 현재 분사는 독립 소유격 분사 구문에서 사용된다. 그런데, 현재 분사가 사용된 독립 소유격 분사 구문을 『개역 성경』(개정)성경은 순서를 바꾸어 해석한다.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이것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1) 헬라어 원문에서는 ‘나아와’와 ‘이루니’에 해당하는 단어는 현재 분사로 되어있다; 2) 원문에서는 ‘이루니’가 먼저 그리고 ‘나아와’가 두 번째로 쓰인다. 두 번째 문제를 먼저 다루자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개역 개정 성경』은 원문의 동사의 순서를 바꾸어 버렸다. 논리적 순서를 따라서 이렇게 결정한 듯한데 이 번역은 그러나 원문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큰 무리를 이루니’라는 번역은 원문의 동사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suneivmi,는 ‘모이다’라는 의미를 전달하며 따라서 이 부분은 ‘큰 무리가 모여들고’라고 번역해야 마땅하다. ‘큰 무리를 이루어’라고 번역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글 『개역 개정 성경』의 두 동사의 위치는 서로 바뀌는 것으로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독립 소유격 분사 구문에 사용된 현재 분사는 ‘~하고 있을 때에’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며 따라서 이 본문에서 두 현재 분사는 각각 ‘모여들고, 나아 올 때에’라고 번역해야한다. 이러한 사항을 종합하여 번역해 보자면 이 구절은 ‘큰 무리가 모여들고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 올 때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로 번역되는 것이 올바르다.

 

11장 29절의 독립 소유격 분사구문에서는 현재 분사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개역 개정 성경』처럼 ‘모였을 때에’라고 과거로 해석하기 보다는 ‘모이고 있을 때에’ 혹은 동사(evpaqroi,zw)의 의미를 살려서 ‘무리의 수가 불어나고 있을 때에’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무리가 모인 후에 말씀하신다기 보다는 모여 드는 것을 보시고 표적을 구하려고 오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15장 20절의 현재 분사는 독립소유격인데, 이 경우는 ‘양보’로 해석하면 의미가 더 잘 통할 수도 있다: ‘그가 아직 저 멀리에 있는데도 (동안에).’ 이 때에도, 현재 분사 독립소유격을 현재 진행형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진행형의 의미를 살려야 하는 예가 다음의 구절에도 잘 나타난다: 17:12; 19:33,37; 20;1, 5.

 

22장 47절의 경우에 현재 분사는 e;ti와 더불어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라는 의미를 전달해 주어야 한다. 『개역 개정 성경』의 번역에 ‘아직’을 넣어서 ‘아직 말씀하실 때에’ 혹은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로 번역해야 마땅하다. 흥미롭게도 60절에서는 동일한 구문을 『개역 개정 성경』은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로 번역한다.

 

24장 5절에는 독립소유격에 과거분사와 현재 분사가 순차적으로 사용되었는데, 개역 개정 성경은 그 차이를 잘 드러내지 주지 못한다. 다음과 같은 번역을 제시해 본다: ‘두려워져서 얼굴을 땅에 숙이고 있을 때에.’

 

24장 36절의 경우에는 다시 독립소유격 현재분사가 사용되어 진행 중인 상태를 표현 한다: ‘이 말을 하고 있을 때에.’ 41절에는 독립소유격 현재 분사가 두개 등장하는데 주동사의 시제가 과거인 까닭에 과거 진행형의 의미를 전달해 주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개역 개정 성경』은 약간 애매하게 ‘여길 때에’라고 번역한다. 다음 번역에서는 ‘놀라고 있을 때’로 하면 바람직할 것이다.

 

위의 예들을 살펴보면, 개역 개정 성경이 독립 소유격 분사 구문에서 사용된 현재 분사의 상(aspect), 곧 진행의 의미를 잘 살려내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동사의 시제에 맞추어 현재 진행형 혹은 과거 진행형으로 번역하려는 시도가 요청된다.

 

7. 현재 분사와 과거 분사의 병행 사용 구문

 

9장 62절의 경우는 과거 분사와 현재 분사가 함께 사용되어서 독특한 시상을 전달해 주는데 안타깝게도 한글 성경 중 어느 것도 이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한글의 특성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은 제대로 번역하고자 시도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쟁기를) 잡고’에 해당하는 분사가 과거 분사이고 ‘돌아보는’에 해당하는 분사가 현재분사다. 왜 누가는 이렇게 서로 다른 시제를 사용했을까? 누가는 ‘쟁기를 잡고 나서 뒤를 돌아보는 자’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곧 쟁기를 잡은 상태에서 뒤돌아보는 이쪽과 저쪽에 다리를 걸치는 행태를 지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쟁기를 잡기로 결정하고 잡고 나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나타내주기 위해 이렇게 시제를 서로 다르게 사용한 것이다. 61절에서 질문하는 사람은 이미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결정을 내린 사람이다. 결정을 내린 상태에서 가족에게 작별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은 것을 말하기 보다는 결정한 후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이 아마도 많은 영어 성경이 과거 분사를 현재 분사와 구별하여 영어의 현재완료로 표현한 이유일 것이다.

 

18장 9절의 경우 현재 분사와 완료 분사가 동일한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동시에 사용된다. ‘믿고’로 번역된 분사는 완료 분사로서 ‘스스로 자신들이 의롭다고 확신하면서’로 번역하면 좀 더 좋을 듯 하다. 왜냐하면, 완료분사는 이미 확신을 한 상태임을 보여주며, 그 상태에서 계속 무시하는 것을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8. 시간 이외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부사적 용법의 분사구문

 

부사적 용법의 분사 구문의 경우에는 시간 뿐 아니라 이유, 양보, 조건, 수단 등의 의미를 전달해 주기도 하는데, 많은 경우에 한글 성경은 부사적 용법의 분사를 시간으로 해석한다. 다음의 예들은 부사적 용법의 분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11장 13절의 경우 현재 분사를 양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 ‘악할지라도’라고 번역한다 (NIV, NIB). 이것은 문법적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본문을 ‘너희가 악하면서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으로 해석하면 약간은 다른 느낌을 준다. 예수님은 인간 존재전체를 악한 존재로 하나님과 대비하여 말씀하고 계신다고 볼 수 있다. 13절에서 현재 분사를 의미가 다를 수 있음에도 과감하게 양보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여 ‘악할지라도’라도 번역했으나 16절에서는 단순히 시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어떻든 목적으로 하면 좀 더 문장의 맛을 살릴 수 있다. 41절과 관련해서는 evneivmi,의 경우에 BDAG는 ‘what is inside' 혹은 ‘the contents'라는 의미를 제시한다. 문맥을 볼 때에, ‘그 안에 있는 것을 없는(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로 번역함이 마땅하다.12장 25절의 경우에 분사를 ‘수단’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양보’로 볼 것이냐의 문제가 있는데 개역 (개정)성경은 ‘수단’으로 (‘염려함으로’) 나머지 성경은 모두 ‘양보’로 본다: ‘염려한다고 (해서).’ 14장 28절의 현재 분사를 한글 성경은 모두 ‘조건’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아주 바람직한 번역이다.

 

15장 2절과 3절의 연결사를 잘 살리면서 과거 진행형으로 번역하면 좋을 듯하다: ‘...가까이 나아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새인과........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7절의 경우에 『개역 개정 성경』과 『공동번역 개정성경』등은 현재 분사 metanoonti를 조건절처럼 번역해 버렸는데 원문에 따르면 형용적 용법으로 보아 ‘죄인’을 수식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본문의 강조점은 회개하는 ‘죄인 한사람’에 맞추어져 있지, 한 죄인이 회개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지는 않다. 똑같은 현상이 10절에서도 발생한다. 13절의 분사는 ‘방탕하게 살면서’로 번역한 표준 새번역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여겨진다.

 

16장 26절의 경우 모든 한글 성경은 원문을 잘 살려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용적 용법의 분사를 살리지 않고 문맥이 통하게 만들어 버린다: ‘너희에게 건너가고자하는 자들도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오고자 하는 자도 건너 올 수 없다.’ 여기서 번역의 원칙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된다. 36절에 등장하는 현재분사의 경우는 어떤 용법으로 해석할 것이냐가 관심사로서, NIV GNV, NAB등은 이유로 보아서 because 혹은 since를 사용한다. 『개역 개정 성경』판을 제외한 다른 한글 성경들은 이것을 이유로 보고 해석한다. 38절의 경우 『개역 성경』성경과는 달리 『개역 개정 성경』과 모든 성경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해석하는데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46절의 경우에 두 현재 분사의 의미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가 관심사인데, ‘원하면’와 ‘좋아한다’로 각각 설명한 『개역 개정 성경』의 번역이 좋아보인다.

 

21장 28절의 경우 표준 새번역과 공동 번역 개정판의 번역이 돋보인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서술적 분사를 조건으로 해석하여 문장을 잘 연결하고 있다. 영어 성경은 단순히 시간으로 해석하여 when을 사용한다. 36절에서는 명령법 다음에 현재 분사가 사용되고 있는데 명령법과 함께 사용된 분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많은 영어 성경은 현재 분사를 주동사와 동일하게 놓고 해석한다: watch and pray (NKJV, NIV, NLT 등). 반면에 여전히 많은 성경은 영어의 분사로 헬라어 현재 분사를 번역한다: watch, praying that~ (NRSV, NASB, ESV). 한글 『개역 개정 성경』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표준 새번역은 ‘~ 하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있으라’, 공동번역 개정판은 ‘늘 깨어 기도 하여라’로 번역한다.

 

23장 7절의 경우에는 현재 분사를 ‘이유’로 해석하면 좀 더 문맥에 어울릴 듯하다: ‘이는 헤롯 역시 예루살렘에 있었기 때문이다.’ 12절에서 현재 분사 o;ntej『개역 개정 성경』에서 ‘양보’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ga,r가 있어서 그렇게 볼 수가 없으며, 따라서 이렇게 번역을 제안해 본다: ‘헤롯과 빌라도가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 그들이 전에는 원수였더라.’ 23장 49절에 등장하는 두개의 현재 분사 중 두 번째 현재 분사는 공동 번역 개정판처럼 과거 진행형으로 번역해야 원문의 의미가 잘 전달된다: ‘지켜보고 있었다’. 『개역 개정 성경』 문체로 하면 ‘지켜보고 있더라.’

 

44절의 경우에 현재분사 (w;n)이 부사 e;ti와 함께 쓰이는데 이 부사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가 관심사다. 표준 새번역과 공동번역 개정판 등은 ‘전에’라고 번역하며 『개역 개정 성경』은 번역을 하지 않는다. 이것을 ‘여전히’라고 번역할 것을 제안해 본다.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누가복음의 현재 분사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번역 원칙을 제시해 본다.

1. 신약 성경의 번역에 있어서 헬라어 현재 분사의 의미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2. 동일한 헬라어 현재 분사 구문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문맥이나 원문의 다른 문법사항을 고려함 없이 기계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번역해서는 안된다. 반면에, 헬라어 현재분사의 의미를 반영할 방법이 있음에도 한글 흐름에 너무 맞추어, 원문의 의미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3. 현재분사와 eivmi, 직설법이 함께 사용될 경우에 eivmi,의 시제에 맞추어 진행형으로 해석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4. 독립소유격 분사구문에 사용되는 현재 분사의 경우에 주문장의 동사와 같은 시간의 동작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더불어 문맥에 따라서 진행의 의미를 살릴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5. 주동사 앞에 쓰인 현재 분사는 대부분 주동사 보다 앞선 동작을 나타내 주는 반면에, 주동사 뒤에 쓰인 현재분사는 주동사 보다 늦거나 같은 시간의 동작을 표현해 준다. 주동사 뒤에 쓰인 현재분사의 경우에 주동사 보다 늦은 동작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6. 현재 분사가 부사적 용법으로 사용되었을 경우에, 이것을 단순히 ‘시간’으로만 해석하기 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양보’ ‘이유’ ‘조건’ ‘목적’등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요청된다.

7. 현재 분사를 진행형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 일반화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8. 직접화법을 이끄는 분사, 주로 le,gw의 현재분사의 의미를 문맥 속에서 살릴 수 있도록 일률적으로 직접 화법 앞에 놓지 말고 직접화법으로 사용된 내용 뒤에 놓는 방법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특히 직접 화법의 내용이 짧을 때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