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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통한 목회자의 자기개발

משׁה 2009. 8. 11. 15:21

독서를 통한 목회자의 자기개발

 

백금산 목사(예수가족교회)

들어가는말 :독서의 중요성

교회사의 탁월한 목회자와 설교자와 신학자치고 소위 ‘책벌레’, ‘독서광’이 아닌 사람이 없었다.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스펄젼이나 로이드 존스등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독서는 그들의 영적 성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특징가운데 하나였다. 끊임없는 자기개발을 통해서 신앙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갔던 목회자들은 경건하고 신학적인 독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독서를 거의 하지 않거나 게을리 하는 목회자치고 성숙한 목회자를 찾아보기는 불가능하다. 부흥시대 때는 목회자들만이 아니라 성도들도 성경과 더불어 신앙서적들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했던 것을 교회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신앙적으로 영적 거인을 제일 많이 배출했던 17세기 영국 청교도들은 ‘책의 사람들’이라 불리기도 한다. 성경책의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경건서적, 신학서적의 사람들이기도 했다. 100여명의 목회자인 저자들에 의한 수많은 신학서적, 경건서적, 설교집들이 간행되어 영국은 책의 나라가 되었고,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열심 있는 독서가들이 되었다. 청교도 시대에 가장 다독가이자 다작가의 한 사람이었던 리챠드 백스터는 그의 유명한 「신앙생활 지침서」속에서 성도들을 위한 독서목록 또는 목회자들을 위한 독서목록을 소개하고 있는데 성도들을 위한 독서목록은 오늘날 목회자들도 감당하기 힘든 분량의 책들이 소개되고 있다. 오늘날 1년에 1권도 신앙서적을 읽지 않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 청교도 시대는 바로 이러한 신앙독서의 전통 속에서 거인들의 시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서에는 단계와 급수가 있다.

독서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실제로 독서의 방식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몰라서 우왕좌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세기 최대의 독서이론가인 모티머 아들러의 독서법을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독서에는 기본적으로 3단계가 있다. 책읽기 1단계는 책을 빠른 시간에 훝어보고 책의 내용을 미리 파악하는 개관독서법이다. 책읽기 2단계는 책을 씹고 씹어서 완전히 내 것으로 철저하게 소화하는 분석독서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읽기 3단계는 같은 주제를 놓고 여러 권의 책을 종합 비교하면서 읽는 종합독서법이다. 이와같이 독서에는 읽어야 하는 책의 종류와 수준에 따라서 적절한 독서법을 구사해야 한다. 사실 책읽기에도 단수와 급수가 있다. 목회자의 성숙을 위한 독서에는 3단계의 독서법을 모두 잘 알아야 하고 읽는 책의 종류에 따라 3가지 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자는 목회자의 신앙성숙을 위한 독서방식으로서 특별히 다음과 같은 4가지의 독서 지침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1.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어라.

목회자의 신앙적. 신학적 성숙을 위한 독서는 무슨 책을 읽느냐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느냐가 중요하다. 신앙성숙을 위한 독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신앙성숙에 꼭 필요한 중요한 책은 완전히 소화하도록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읽고 읽고 또 읽어서 나의 피와 살이 될 때까지 읽고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성숙을 위한 독서에 있어서는 많이 읽는 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빨리 읽는다고 속독을 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정말 신앙에 유익이 되는 책은 종이가 마르고 닳도록 읽어야 한다. 완전히 내용을 흡수할 때까지 무슨 페이지에 무슨 내용이 나오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읽어야한다. 많은 책을 적게 읽기보다는 적은 책을 많이 읽어야한다. 많은 책을 대충대충 읽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많이 읽어야한다. 이렇게 한 권 한 권 소화시킨 책들이 평생에 열 권만 있어도 다른 책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 그 열 권의 책은 신앙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에 도움을 주고 영향을 줄 것이다. 만일 30권만 평생에 이렇게 읽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필자의 이러한 독서론과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서 아더핑크과 스펄젼의 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세기의 훌륭한 성경연구가인 아더 핑크는 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가운데 자신의 독서론을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한 두명의 저자에게 보내는 시간을 다른 20-30명의 저자보다 50-60배 더 많이 하라” 또한 역대 목회자가운데 최고의 독서가였던 스펄젼은 자신의 독서론을 이렇게 말한다. “철저하게 읽으라. 흠뻑 몸에 밸 때까지 그 안에서 찿으라. 읽고 또 읽어 되씹어서 소화해버리라. 바로 여러분의 살이 되고 피가 되게 하라. 좋은 책은 여러 번 독파해서 주를 달고 분석해 놓으라” 실제로 스펄젼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생애동안 무려 100번 이상 읽었다.

 

2. 한 사람의 저자를 집중적으로 읽어라

필자가 제안하는 목회자의 성숙을 위한 독서에 있어서 두 번째 중요한 방법은 신앙과 신학에 도움이 되는 탁월한 한 사람을 발견하면 위의 방법으로 그 사람의 책을 전부 다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한 사람의 탁월한 저자라 할찌라도 그의 책 모두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각 분야에는 가장 뛰어난 전문가가 있기 마련이다. 분야별 최고의 책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주 뛰어난 한 사람의 저자는 그가 다루는 주제마다 그리고 그가 쓴 책마다 그 분야의 가장 뛰어난 내용 일 때가 있다.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곡은 그 곡이 어떤 곡이든지 간에 아주 탁월한 연주가 되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그런 저자를 발견했을 때는 그 저자가 쓴 모든 책을 빠짐없이 읽는 것이 좋다. 그 저자의 사상을 통채로 이어 받는 것이 좋다. 스승과 제자가 사상적인 교류를 통해서 제자의 사상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그 스승보다 뛰어나지 못하다면 그 스승의 사상을 전수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그 스승보다 제자가 뛰어나다면 스승의 사상을 넘어서 그 깊은 사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이 평생토록 체험하고 생각한 경험과 사고의 진수를 액기스처럼 흡수하게 될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읽고 잇는 저자의 수준에 근접하게 따라가게 될 것이다. 신앙성숙을 위해 책을 읽는 방식은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이 스승과 제자간의 개인적인 교육과 학습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읽어야 한다. 마치 모든 무술을 전수하는 스승과 제자사이의 관계처럼 밀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학문에 있어서 스승과 제자사이의 학풍이 전달되는 방식으로 저자와 독자사이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신앙성숙을 위한 도약이 이루어지게 된다.

 

어떤 영적 스승을 만날 것인가?

그러므로 이와 같은 독서를 통한 개인적인 신앙지도를 받으려고 할 때는 신앙의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신앙의 스승을 잘 택해야 한다. 예술이나 무술이나 기술이나 학문이나 간에 스승의 인격과 실력의 크기만큼 제자가 자라기 마련이다. 스승의 그릇이 너무 작으면 그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 전혀 도움이 안된다. 각분야에는 각기 최고의 달인들이 있다. 자기 분야에서 각기 완성의 경지까지 도달한 스승들이 있다. 각분야의 거장밑에서 사사를 받는 것은 그 분야의 거장이 되는 거의 유일한 지름길이자 바른길이다. 음악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악성이라고 한다. 무술에서는 고수라고 한다. 바둑은 입신의 경지라고 한다. 사실 인간의 모든 분야는 역사상 이러한 거장들에의해서 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이러한 거장들이 생길 때마다 그 밑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그 거장의 영향력 속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교회사에도 각 시대마다 가끔식 이런 영적인 거인들이 나타났었다. 바로 그러한 신앙의 거장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지혜로운 영적 거인족인 청교도 선배들

그렇다면 독서를 통해 우리가 평생 배울만한 우리의 평생 스승이 될만한 영적 거인들은 누구인가? 아더핑크는 후배에게 보내는 어느 편지의 한 대목에서 이런 영적 거인들을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다. “존 오웬, 토마스 굳윈, 토마스 맨톤이 루터 칼빈보다 2배 더 유익하다”. “ 조나단 에드워즈, 존 오웬을 읽는데 2년 걸린다. 다른 책들은 보지 말라” 아더핑크가 말하는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청교도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아더핑크가 소개하는 청교도들을 영적 스승으로 삼아보라. 영적 광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위대한 영적 고수들이다. 그들에게 배운 사람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복음주의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제임스 팩커는 청교도를 40여년 연구한 끝에 청교도들을 둘레가 20-30m요 높이가 거의 100m 가까이 되는 지구상에서 제일 큰 생명체인 레드우드 삼나무가 밀집되어 있는 레드우드 공원에 비유한 적이 있다. 한마디로 20세기의 어리석고 난쟁이인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청교도들은 지혜로운 영적 거인족들이라 부르고 있다.

 

교회사의 영적 거인들

필자는 17세기의 청교도들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영적 스승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2000여년 교회역사 가운데서 가장 훌륭했던 영적 거인들이다. 또한 경건과 신학이 결합된 인물들이었다. 당대와 후대의 교회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목회자와 설교자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 여섯 사람들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들의 모든 저서들을 읽고 소화하면 큰 도움이 될 사람들이다. 필자는 이들의 저서들을 이제 막읽기 시작한 학생에 불과하지만 우선 맛보기만으로 너무나 스승을 잘 선택했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어거스틴(5세기), 칼빈(16세기), 존 오웬(17세기), 조나단 에드워즈(18세기), 스펄젼(19세기), 로이드 존스(20세기)등이다.

 

20세기의 영적 복음주의 지도자들

그러나 실제적으로 교회사에 나타난 영적 거인들을 독자들이 당장 접하기가 어렵다면 20세기의 훌륭한 복음주의적 영적 지도자들을 한 사람씩 마스터하는 것도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이와같은 인물로는 로이드 존스, 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 프란시스 쉐퍼가 있다. 또한 약간의 독특한 신앙색깔을 가지고 있어서 보편적으로 모든 목회자에게 공감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신앙과 사고의 통찰력을 가져다주는 사람으로서 시 에스 루이스, 자끄 엘룰, 에이든 토저, 워치만 니도 있다. 한 번쯤 이들의 문하에 입문해서 배우면 신앙성숙에 크게 도움될만한 인물들이다.

 

3.독서의 균형을 맞추어라

목회자의 성숙을 위한 독서의 중요한 3번째 방법은 독서시간 배분에 있어서 책의 종류에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기가 읽는 책의 종류에 따라서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먼저 신학서적과 경건서적의 독서에 있어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신학서적만을 읽는 사람은 머리는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가슴은 자꾸만 식어지게 된다. 자칫하면 신학공부가 이렇게 될 수 있다. 신학교에 들어갈 때는 불덩이가 되어서 들어갔는데 신학교를 졸업할 때는 숫덩이가 되어서 나온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이다. 반대로 신학서적은 읽지 않고 경건서적만 읽는 사람은 가슴은 쉽게 뜨거워질 수 있지만 그 열정은 곧 식어버리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변질되기가 너무 쉽다. 그러므로 신학서적과 경건서적을 읽는 것의 균형이 필요하다. 독서의 균형을 통해서 지성과 영성의 균형을 끊임없이 유지했던 대표적인 중요한 사례로서는 18세기의 조나단 에드워즈와 20세기의 로이드 존스를 들수 있다. 에드워즈는 아주 젊은 시절부터 독서에 있어서 균형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의 독서의 원칙을 하루나 혹은 반나절을 신학공부를 하면 하루나 반나절은 다른 공부를 하는 방식으로 지식의 추구에 있어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추었다. 우리는 에드워즈의 일기를 통해서 이러한 면을 보게된다.

“나의 참된 관심사에 비추어 볼 때 내가 공부하는 데 있어서 할 수 있는 한 비슷하게 다음과 같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 내게 가장 유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공부할 때, 하루의 절반 또는 많아도 하루는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고, 그 다음의 하루의 절반 또는 하루는 신학공부를 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돌아가면서 균형 있게 하도록 하자(1725년 11월 16일)”.

아마도 조나단 에드워즈의 독서론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로이드 존스 독서론의 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균형있는 독서를 하십시오. 균형이 깨진 독서처럼 거짓된 지식을 낳는 것도 없습니다. 만일 신학서적만 읽는다면 이러한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균형있는 식사를 하듯이 독서에서도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을 것입니다. 제가 겸손하게 말씀드린다면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은 신학서적과 전기 읽는 것을 서로 균형 있게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그렇게 했습니다. 항상 휴일에 그랬고, 매일같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특히 휴일 아침에는 신학책을 읽고 밤에는 전기를 읽으려고 노력합니다.(로이드 존스, 청교도 신앙 p54”

 

독서의 균형에는 신학서적과 경건서적의 균형만이 아니라 고전과 신간 독서의 균형도 필요하다. 시 에스 루이스는 고전과 신간을 번갈아 읽을 것을 권한다. 적어도 신간3권에 고전 1권의 비율정도로는 고전과 신간읽기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는 20세기 최대의 지혜로운 독서가의 충고이다. 고전을 소홀히하고 최신간만 읽는 사람은 바보다. 상업주의에 물든 출판사에 의해 과장된 광고로 포장된 일부 현재의 유명인들의 최신간만을 보고 몇 백년, 몇 천년의 검증기간을 거쳐서 영적 성숙에 유익하다고 판정된 고전을 소홀히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베스트 셀러라는 광고에 현혹되지 말라. 베스트 셀러가 좋은 책이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베스트 셀러속에는 좋은 책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베스트 셀러는 말 그대로 많이 팔린 책이라는 말이다. 독자들이 모두 성숙하고 분별력있는 독자라면 많이 팔린 책은 그만큼 좋은 책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가벼움이 특징인 독자들이 많이 읽는 책은 또 얼마나 가볍겠는가? 이런 경우 가볍지 않으면 많이 팔리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가끔식 신문지상에 베스트셀러 광고만 보고 이따끔씩 유행에 뒤지지 않게 그런 책들만을 보는 목회자의 영적 가벼움은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것인가? 따라서 필자는 목회자들의 자기 성숙을 위한 독서 목록에 지금보다 고전을 더많이 올려놓으라고 권하고 싶다. 고전을 통해 신앙선배들의 영적 성숙을 보라. 그리고 우리 시대의 영적 성숙도와 비추어 보라.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훨씬 더 객관적으로 잘 볼 수있다. 그래서 필자는 고전읽기와 신간서적 읽기의 균형 또한 신앙성숙을 위한 독서의 중요한 한 방편이라고 제안한다.

 

4.주제별로 읽어라

마지막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을 때는 여러 사람의 저자들을 비교 검토해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 주제별로 공부하고 싶을때는 최대한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다 구해서 읽어라. 이것은 어떤 문제를 연구하거나 발표하기 위한 전문독서를 위한 방식이다. 가령 로마서를 강해하려고 한다면 강해설교를 시작하기전 로마서에 관한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는다. 또한 교회에 대한 주제별설교를 하려고 한다면 교회에 관한 모든 관련된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는다. 이렇게 성경의 한 책 혹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길때마다 그 방면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어가면 전체적인 지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게 된다. 강해하거나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성경의 책수가 늘어가면 갈수록, 또한 주제가 늘어갈수록 이러한 독서는 곧 자신의 신앙성숙으로 연결되며 자신의 사역과도 직결된다.

 

맺는말: 평생 독서의 스케쥴을 만들자

목회자의 자기개발을 위한 독서는 신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된다. 신학교 재학중에는 골고루 모든 신학분야의 기초공부를 하느라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분야의 지식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자기의 신앙과 신학성숙을 위한 것으로 소화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따라서 본격적인 신앙성숙과 목회를 위한 독서는 신학교 문턱을 나서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해야한다. 신학교 졸업은 목회자의 독서의 출발점이 되어야지 종착점이 되어서는 안된다. 목회자의 자기성장을 위한 평생공부는 졸업하면서부터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신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목회자들은 평생의 자기개발과 성장을 위해서 나름대로 자기에 맞는 평생 독서 계획표를 세우는 것이 좋다. 평생 성숙을 위한 독서 계획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들어가면 좋을 것이다. 첫째, 기본적 신학독서 계획표 둘째, 영적 거인 독서 계획표 세째, 평생 고전(경건필독서, 신학필독서) 독서 계획표 네째, 강해하고 싶은 성경의 주석서, 강해서, 연구서 독서 계획표 다섯째, 강해하고 싶은 성경의 주제별 독서 계획표등을 나름대로 만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체계적인 독서가 체계적인 성숙의 밑거름이다. 무계획적인 중구난방식의 독서는 신앙과 신학성숙의 부실공사만을 초래한다.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지식은 평생토록 자기 성숙과 목회방향을 잡지못하고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근본적 원인이다. 앞으로 필자의 작은 소망가운데 하나는 목회자들의 평생독서를 위한 3부작의 독서 길잡이를 만들어 보고싶다는 것이다. 1권은 평생공부하는 목사의 신학공부 독서 길잡이요 2권은 평생공부하는 목사의 평생스승 길잡이요 3권은 평생공부하는 목사의 기독교 명저 길잡이다. 독자들도 나름대로 한 번 만들어 보라.

필자는 21세기 한국교회의 수준은 목회자의 수준에 달려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목회자의 수준은 목회자의 독서 수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깊이 음미해 볼 만한 명언이다. 더욱이 독서를 통한 자기개발을 원하는 목회자에게는 깊이 명심할 만한 금언이다.

 

* 1999년 12월 '목회와 신학'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