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마가복음
지금까지 마가복음은 주로 마태복음의 그늘 아래 가려진 채 독자적으로 이해(설교)되지 못하였다. 그 주된 이유는 마가복음이 마태복음과 비교해 볼 때 예수님의 족보나 탄생기사(그리고 부활기사까지)가 없고 또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기술이 매우거칠고 요약적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공관복음서들의 설교를 돕는 보조적 기능으로서 단순히 인용되는 정도에 그쳤다. 그리고 마가복음 내의 특정한 본문을 설교한다 하더라도 마가복음 자체의 의도와 문맥 안에서 본문의 사건이 가진 기능과 의미를 이해하여 설교하기보다는 그것을 단순히 예수님의 생애의 전기(傳記)의 한 부분으로 간주함으로써 설교시 마가복음의 본문을 읽지만 다른 공관복음서들(주로 마태복음)의 역사적 증거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해석 또는 설명하거나, 아니면 거의 영적이고 교훈적 측면에서 설교되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시도한 이러한 해석과 설교를 지양하고 마가복음 자체에 나타난 저자(본문)의 의도를 보다 명확히 파악하여 설교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내러티브적 주해를 시도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신약정경 안에는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하나의 복음서가 아니라 사복음서들(four Gospels)이 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사복음서들을 가지고 예수님의 생애를 하나의 완전한 전기로 짜 맞추어서 이해하려는 시도보다는 오히려 각각의 복음서가 가진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독특한 메시지를 각각의 복음서의 청중들이 처한 상황에서 이해해야 함을 주지해 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가복음을 독립된 복음서로 간주하여 읽는 `통전적 읽기`(reading the Gospel of Mark as a whole)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러한 `통전적 읽기` 위에서 마가복음이 가진 구조(structure)와 작품세계(narrative world), 그리고 그것의 전체 구성 즉 줄거리(plot)가 무엇이며, 그것의 중심된 주제들(themes)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통전적 읽기`와 함께 우리는 본문 자체의 증거와 그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통해 마가의 청중(독자)이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달부터 연재되는 마가복음의 <주해에서 설교까지>는 무엇보다도 마가복음의 `통전적 읽기`에 기초하여 되어지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전체로서 마가복음의 구조와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서 먼저 앉은자리에서 마가복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를 권장하고 싶다. 그리고 마가복음(다른 복음서들과 함께)은 서신서나 계시록과는 다른 내러티브 장르이기 때문에 이러한 장르인식에 기초한 본문의 해석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앞으로 다룰 내러티브적 주해(와 설교)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서론적 이해를 곁들이고자 한다.
I. 내러티브적 주해(와 설교)를 위하여
이미 필자의 여러 글들(1995, 1996, 1997)에서 밝힌 대로 복음서는 `내러티브`(story [내러티브의 내용인 what] + discourse [스토리가 말해진 방법을 다루는 내러티브의 수사학인 how])의 장르에 속하기 때문에 내러티브적 주해는 1). 복음서의 내용(what의 문제)인 `예수의 생애`의 스토리(엄밀한 의미에서 마가에 의해 선별된 예수의 생애의 스토리)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며 2). 그리고 이와 함께 이러한 `예수의 생애`의 스토리를 청중의 상황과 그에 대한 복음서 기자의 수사학적
의도와 효과를 위해 저자가 사용하는 여러 가지 서사적이고 수사학적 장치들과 표현기법들(how의 문제)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Rhoads & Michie 1982; Malbon 1992; Telford 1995). 위의 사항들을 고려한 내러티브적 주해와 설교의 내용을 도표로 간략하게 묘사한다면:
설교자 -> [저자 -> [마가복음의 스토리 세계] -> 독자] -> 설교자의 청중
\ 복음서 기자(마가)와 그 청중의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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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스토리의 세계와 저자의 수사기법과 독자의 반응)
설교(설교자의 수사기법과 청중의 반응)
위의 이러한 견해가운데 내러티브적 주해는 먼저 마가복음의 내용(what)을 말하는 스토리에 대한 이해를 살펴 볼 것이다.
1. 복음서의 내용인 스토리 이해
마가복음의 스토리에 대한 탐구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인물들(characters)과 배경들(settings)에 대한 이해, 그리고 사건들이 전개되어 가는 줄거리 곧 플롯(plot)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스토리 - 역사적 스토리든 허구적 스토리든 - 의 구성요소들을 등장인물, 배경, 그리고 사건으로 본 것이 바로 여기에 속하며, 특히 구성 즉 줄거리(plot)는 이러한 사건묘사와 전개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것들을 마가복음의 내러티브적 주해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한다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진행될 수 있다: 인물분석과 이해; 배경 이해; 플롯 이해.
1) 인물분석과 이해.
마가복음에 나타난 인물들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위해 먼저 인물들을 주역들(major characters)과 조역들(minor characters)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마가복음에서 주역들은 예수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열둘을 가리킴)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말한다. 특히 예수는 마가복음의 플롯의 흐름과 발전을 결정하는 중심인물로 그의 공사역(특히 이적사역[1-8장]과 수난사역[8-1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 가르침의 사역은 이 둘과 모두 관련되어 있다)을 통해 `그가 누구신가`에 대한 의문과 논란을 중심으로 스토리는 갈등과 서스펜스를 일으키며 결국 십자가의 죽음의 파국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 수난과 죽음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구원계획으로 제시되어졌고(8:31; [9:12;] 9:31; 10:33-34, 그리고 10:45) 부활을 통해 하나님은 이것을 `복음`( )으로 선언한다(1:1; 13:10; 14:9). 여기에 제자들은 이 복음의 구원계획의 조력자로 제시되는 것 같으나 사실 그들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에 있어서는 조력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연약한 실패자들(대적자인 종교지도자들과는 구별됨)로 나타났고, 결국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이들은 갱신(회복)되어 복음의 일꾼("사람낚는 어부")이 될 것을 보여준다(1:17; 14:28과 16:7, 그리고 6:7-13, 30과 13:9-13). 여기에 비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불신앙의 미움과 거절과 배척을 통해 예수님의 대적자로 나타나 예수님을 살해하게 되며 그들의 부패로 성전의 멸망이 선언되어진다(13:1-2).
반면에 조역들은 `무리들`과 예수께 나아온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예외로는 야이로와 바디매오는 이름이 언급되기도 함)인 믿음(또는 불신앙)의 `소자들`로서 이들은 우리가 잘 아는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 예수님의 가족들; 거라사의 광인; 혈류증 여인; 헤롯과 헤로디아와 살로메; 회당장 야이로; 수로보니게 여인; 귀먹고 어눌한 자; 벳새다의 소경;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 한 부자; 거지 소경 바디매오; 성전의 한 과부; 향유 부은 여인; 백부장; 그리고 여인들을 말한다. 마가복음에서 이들
은 단순한 배경의 역할로 이해되기보다는 오히려 마가복음의 주된 플롯과 의도를 잘 반영해 주는 역할을 한다(Williams 1994; Malbon 1994). 즉 이들 조역들의 대부분은 제자들이 보여주지 못한 참된 제자도의 모습 즉, 예수님의 신분에 대한 바른 이해나 믿음과 수난에 대한 순종의 모습을 예수님께 대한 자신들의 반응을 통해 대신 그려주는 `대리 제자들`(foils for/against true discipleship)의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마가복음에서의 조역들의 모습은 마가복음의 중심 주제인 `예수가 누구신가?`라는 그의 사역과 신분에 대한 질문의 기독론적 이해와 더불어 `나를 따르라`는 명령에 적절히 반응해야 하는 제자도에 대한 이해를 바로 깨닫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주해와 설교는 이러한 조역들의 모습에 대한 연구에 많은 강조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역과 조역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사람으로서 마가복음에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세례 요한이다. 세례 요한은 마가복음의 플롯과 주제를 받쳐주는 중요한 인물로 마가의 기독론과 제자도를 이해하는 연결고리와 같다. 그는 복음서의 시작에 `주의 길`(The way of the Lord)을 예비하는 자(1:2-3)로서 구속의 길의 중심인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예표(막 1:14과 9:12-13)로서 뿐 아니라 제자의 길 즉 복음의 길의 모델(막 6:14-29)로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 요한 -> 예수님 -> 제자들의 삶이 구속역사의 지평에 나란히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막 1:14; 9:31과 10:33; 그리고 13:9에서 "잡힌" 혹은 "넘기워진"으로 번역된 라는 헬라어 동사를 유의하라). 즉 세례 요한이 복음을 전파하고(1:7) 수난을 당한 것(1:14; cf. 6:14-29) 처럼, 예수님도 천국 복음을 전하고(1:14) 수난을 당하셨고(9:31; 10:33), 그리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역시 복음을 전하고(13:10) 수난을 받아야 한다(13:9-13)는 것(During & Perrin 1994:322)을 세례 요한의 모습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에서 세례 요한에 대한 이해는 마가복음의 기독론과 제자도를 이해하는 골격이 된다.
결국 우리의 주해와 설교는 예수님의 공사역(이적사역과 수난사역)에 대해 이와 같은 많은 인물들(주역과 조역 모두)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즉 그의 신분에 대한 깨달음(기독론적 이해)과 함께 또한 그들이 어떻게 믿음과 순종으로 나아가고 있는가(제자도적인 이해)를 관찰할 것이다. 이 경우 인물들에 대한 이해는 막 4 장의 씨 뿌리는 비유에 나타난 네 가지 토양의 모습과 특징들에 비추어서 평가함(cf. Tolbert 1989)과 동시에 이들 인물들간의 비교와 대조를 통하여 독자가 어떻게 예수님의 교훈과 사역, 즉 복음에 반응할 것인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의 인물이해는 단순히 역사적 의미에만 집중하지 않고 전체의 플롯에 따라 이해될 것이다.
2) 배경에 대한 이해.
인물과 함께 배경에 대한 이해는 스토리의 사건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특히 스토리에서 배경은 독자적인 것으로 제시되기보다는 항상 특정한 스토리의 사건과 관련하여 언급되어지는데 이 경우 배경은 줄거리(plot)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Rhoads & Michie 1982:63). 일반적으로 배경은 장소(place)와 시간(time)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가복음의 배경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즉 하나는 지리적이고 지형적인 배경(geographical & topographical setting)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시간적인 배경(temporal setting)이다. 특히 마가복음에 언급된 지리적이고 지형적 배경들에 대한 이해는 마가복음의 구조 뿐 아니라 플롯과 의도를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Rhoads & Michie; Malbon; Van Iersel). 왜냐하면 마가복음에서 언급된 이들 배경들은 단순히 사실성에 강조를 둔 역사적 배경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진 상징적(신학적)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에 언급된 많은 지리적 장소들 중에 특히 갈릴리와 예루살렘은 단순한 역사-지리적 의미를 넘어 더 깊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동안 많은 학자들(Marxsen; Lightfoot; Malbon; Van Iersel)에게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갈릴리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주된 무대로 제자들을 부른 장소임과 동시에 이방선교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예수님을 따른 민초(民草)와 같은 무리들이 있었고 또한 이적과 신앙의 반응이 있었던 반면에, 예루살렘은 종교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예수님에 대한 살해모의가 있었던 곳으로 불신앙과 배척의장소이다. 이 두 지리적 장소들은 마가복음의 구조와 플롯을 이해하는데도 크게 기여하여 왔는데 마가복음의 전반부(1:14-8:26)의 사건들은 거의 갈릴리(와 그 주변지역들)를 중심으로 되어졌고 그
리고 후반부(11:1-16:8)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사건들이 전개되었다. 이 중에 갈릴리는 막 14:28과 16:7에 다시 언급되는데 이 장소적 의미는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논란(부활의 장소냐 아니면 파루시아[재림]의 장소냐 와 함께 부활 후의 단순한 상봉이냐 아니면 이방선교 또는 제자도를 위한 갱신이냐의 문제)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지리적 언급과 구분가운데 마가복음은 또한 지형적 장소들에 대한 언급들이 나타나는데 그 중에 특기할 만한 것들로는 광야 또는 한적한 곳[ ](1:4, 12-13, 35, 45; 6:31, 32, 35; 8:4)과 바다[ ](1:16; 2:13; 3:7; 4:1; 5:21; 7:31)와 그와 관련된 배[ / ](3:9; 4:1, 36; 5:2, 21; 6:32, 45, 54; 8:10; 14), 그리고 산[ ](3:13; 6:46; 9:2; 13:3)과 길[ ](8:27;
9:33, 34; 10:17, 32, 46, 52)과 성전[ ](11:11, 15-17, 27; 12:35; 13:1-3; 14:58; 15:29; [15:38])으로 이 지형적 장소들은 앞으로 우리가 자주 논의하는 대로 마가복음의 구조적 의미와 그에 따른 플롯과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해석적 배경이 된다. 이들 중에 특히 광야와 바다와 산과 성전은 구약의 출애굽 모티브인 [시내와 신]광야와 [홍해]바다와 [시내]산에서의 사건들을 상기시켜 줄 뿐 아니라 또한 성전 모티브(이사야와 에레미아)와 관련되어 있다(Lane; Stock;
Swartley). 그 외에도 중요한 것들은 집( )과 회당( )으로 이것들은 그 당시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과 관련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3). 구성/줄거리(plot)에 대한 이해
마가복음의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특히 플롯(plot)에 대한 이해는 인물들과 배경들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사건들의 묘사와 사건들이 전개되어 가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일로 이것은 저자(본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첩경이다. 흔히 우리가 영화나 소설들을 읽을 때 자극적인 어느 한 장면이나 특정 표현에만 치우쳐 이해한다면 우리는 전체(숲)를 보지 못하고 부분(나무)만 보는누를 범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의 특정사건(장면)이나 전체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플롯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마가복음의 플롯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 시간적 플롯의 형태로 마가복음에서 사건들의 시간적 전개를 이해하는 것은 작품에 나타난 저자의 의도와 목적을 간파하는 열쇠가 된다. 저자의 의도를 반영해 주는 줄거리(plot)의 시간적 전개로서는 `연대기적인 순서`와 `도치형식`, 그리고 `회상형식(flashback device)`이나 `예상형식(foreshadowing device)`을 들 수 있다. 마가복음은 이러한 시간적 전개들이 모두 나타나지만 특히 `예언과 성취`의 패턴 속에 잘 어우러져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예언과 성취`의 시간적 패턴은 마가복음의 의도와 흐름을 간파할 수 있는 중심된 줄거리 전개방식이다(Shim 1994:119-122; Petersen 1978:49-80). 이것을 도표로 간략하게 묘사하면 아래와 같다:
<`약속과 성취`의 패턴에 따른 줄거리 이해>
이사야의 예언 요한의 예언 예수의 예언 -----> [예수의 재림을 향하여]
\ / \ / \ 세례 요한 예수 --(제자들)--예수의 죽음과 부활--(제자들)
예언의 성취------------------------------------> 작품세계의 시간을 넘어서
위의 도표에 나타난 대로 대로 마가복음에 언급된 많은 `예언들`은 작품세계 속에서 그 `성취`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서두에서부터 세례 요한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1:2-3)이 세례 요한의 출현과 사역(1:4-8)을 통해 `성취`되어졌고, 이어서 세례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예언`(1:7-8)이 끝나자마자 `성취`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등장(1:9-15)한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사라지면서(1:14의 "요한이 잡힌 후")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언(예언)하며 그의 공사역을 시작하는데, 이후의 마가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이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어떻게 성취되어 가는가`를 보여준다. 특별히 제자들의 미래(운명)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인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의 말씀(1:17)과 자신의 수난의 운명에 대한 예언(8:31; 9:31; 10:33-34)은 마가복음의 사건전개의 중요한 골격으로서 독자는 이것들이 스토리 내에서 어떻게 성취되어 가는지를 보는 것은 줄거리 이해에 대단히 중요하다. 이 가운데 특히 예루살렘입성 후에 예수님의 나귀새끼
에 대한 예언(11:1-3)과 무화과나무의 저주에 대한 예언(11:14), 그리고 막 14 장의 다른 많은 예언들(유월절을 위한 방[13-15]; 유다의 배반[17-21]; 예수님의 체포[27a]; 제자들의 도주[27b]; 베드로의 부인[30])이 곧바로 성취되어짐은 자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언들(8:31; 9:31; 10:33-34; 10:45)이 어떻게 성취의 절정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지를 미리 암시해 준다. 특히 1:17("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의 예언은, 제자들에 대한 그의 지속적 가르침
과 함께함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져 가는데 비록, 이들의 따름이 연약(실패) 속에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이 예언을 끝까지 이루어 가신다. 이 경우 막 14:28의 예언(16:7)은 그러한 예언의 성취를 확인해 주는 또 다른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보는 대로 예수님의 이 모든 예언들은 계속적으로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데 특별히 예수님 자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예언은 마가복음의 스토리 내에서 성취되지만 그러나 부활 후의 제자들과의 갱신의 상봉(14;28; 16:7)은 미래의 것으로 남겨진 채(물론 독자들의 시간에 있어서는 성취된 것임)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승천 후 부터 파루시아까지의 제자들의 삶(13:9-13)과 종말전의 현상으로 소개된 예루살렘 멸망의 모습(13:2-3, 14-23)과 파루시아의 모습(13:24-27; 14:62)은 앞으로 이루어질 예언(약속)으로 남아있다.
확실히 예수님의 예언들(말들)은 마가의 주장(13:30-31)처럼 결코 헛되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루어질 예언들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말은 신적 권위를 가진 능력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점은 마가복음에서 보는대로 예수님의 말이 서기관들의 말과 질적으로 다른(1:22), 귀신도 쫓아내며(1:27) 풍량도 잠잠케 하는말(4:39-41)로 작중인물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듣고 순종하여야 할 말(9:7), 즉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10:27) 하나님의 아들의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가복음에 묘사된 사건들의 이러한 시간적 전개인 `예언과 성취`의 플롯형태는 마가의 독자들로 하여금 마가복음의 스토리를 적절히 이해하고 반응케하는 골격이 된다.
둘째로, 위의 `시간적 플롯` 속에 우리는 또한 `갈등(conflict)의 플롯`을 가지는데 이 `갈등의 플롯`은 `사명`(commission) 또는 `임무`(mandate)의 플롯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이 경우 `사명` 혹은 `임무`는 전체 스토리가 전개되어 가는 목표와 목적을 제공해 주는 줄거리의 핵심으로서 작중인물들이 이 `사명` 혹은 `임무`의 수행여부를 놓고 스토리는 갈등이 고조되어 서스펜스가 생기고 결국 절정과 파국(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마가복음에서 `사명` 혹은 `임무`는 두 가지로 이해되어지는데 그 중 하나는 예수님에게 주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어졌다. 물론 이 둘은 마가복음에서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다. 스토리 내에 주어진 예수님의 사명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1:11; 9:7; cf. 1:1)로서 고난받는 메시아의 길을 가는 것이며(8:31; 9:31; 10:33-34; 10:45), 제자들의 사명은 예수님를 따르는 자(1:17)로서 복음(주의 말씀)을 위해 자신을 부인하며 고난과 봉사의 길을 가는 것이다(8:34-38; 9:35-36; 10:15-16, 42-44). 그러므로 마가복음의 스토리
의 사건전개는 이 `사명`(`임무`)의 플롯 속에 두 중심인물(예수님와 제자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들을 실현하게 되는지에 따라 갈등과 서스펜스가 생기고 스토리는 그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물론 여기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일 사명(3:6; cf. 12:7이하)을 가지고 나타나며,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한 그들의 살해모의(14:1)는 유다의 배반을 통해(14:10-11), 결국 예수를 잡아죽임으로써(14:46-15:39) 마가복음의 스토리는 극적 갈등과 서스펜스 가운데 절정에 이른다. 이러한 스토리의 전개 속에 독자는 예수가 메시아로서 그의 사명을 완성하였음을 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주어진 수난을 이기지 못하고 배반과 부인과 도주의 길을 가는 제자들의 실패를 보면서 독자는 그들의 실패에 공감(자신들의 모습에서)과 반감(해설자의 견해에서)을 동시에 가진다. 그 중에 특히 제자들의 회복(갱신)을 위한 예수님의 약속(막 14:28과 16:7)은 그들에게 커다란 위로로 나타나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 주님처럼 살 것을 다짐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사명` 혹은 `임무`의 플롯은 독자로 하여금 마가복음의 사건전개를 바르게 이해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어떻게 주님의 제자로서 행동해야 될 것인가를 안내하는 길잡이가 된다.
끝으로, 이 모든 것은 마가의 신앙적 가치판단인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과 "인간의 일을 생각하는 것"(8:33)에 따라 사건들이 갈등가운데 전개되면서 스토리는 그 절정인 하나님의 일 즉 `주의 길`(1:3)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두 이념적 견해는 독자로 하여금 마가복음의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사건들의 의미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의 말과 행동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제시되어지면서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다(9:7). 여기서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배척)하는 행동은 베드로의 모습에서 제시된 것(8:32-33)처럼 모두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 곧 사탄의 일이 되고 만다. 이와 같이 마가복음의 플롯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과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cf. 7:8; 10:27; 12:17) 사이의 갈등에 의해서 스토리가 극적으로 전개되어 가는데 이 경우 이 두 가지 이념적 가치판단은 마가복음의 플롯을 이해하는 골격이 된다.
2. 서사 기법들과 수사적 장치들
마가복음의 내러티브적 주해와 설교는 지금까지 논의된 인물과 배경과 플롯에 대한 `스토리의 내용`(what의 문제)을 다룸과 함께 저자가 이와 같은 `예수의 생애`의 스토리를 또한 어떻게 자신의 의도에 따라 묘사하고 있느냐 하는 `스토리의 수사학`(rhetoric of narrative)에 대한 것들을 다루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수사적 장치들과 표현기법들에 대한 탐구(how의 문제)가 논의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토리(story)와 그것을 해설하는 해설자(narrator)를 구분하여
이해해야 하고 이 경우 해설자의 견해(point of view)와 논평(commentary)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직접 수사학)은 내러티브적 주해에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와 함께 여러 가지 수사적 장치들과 표현기법들(간접 수사학)을 탐구해야 한다. 이 중에 특히 우리의 주해와 설교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두 가지는 아이러니(irony)와 샌드위치 기법(sandwich technique 혹은 intercalation)으로 본 연재에서는 이 둘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먼저 해설자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면:
1) 해설자(narrator)에 대한 이해: 해설자의 관점과 논평
해설자(narrator)란 독자가 스토리를 읽을 때 스토리의 본문 속에서 그 스토리를 말하고 설명하는 저자(author)의 목소리를 말한다. 사실 독자는 본문(특히 마가복음과 같은 오래된 본문일 때)을 읽을 때 육체와 피를 지닌 역사적 원저자(real historical author)를 만날 수가 없고 단지 본문에 각인된 저자만 만난다. 이것을 문학적 용어로는 [본문에] `내포된 저자`(implied author)라고 말하는데 이 저자는 해설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말하고 있다(Malbon 1992:26-27). 이 경우 독자는 해설자를 통해 본문을 이해하게 되는데 여기에 해설자의 관점(point of view)과 그의 논평(commentary)은 독자가 본문의 의미 곧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안내서가 된다.
마가복음의 해설자(narrator)는 우리가 아는 대로 일인칭 해설자(때론 등장인물중 한사람이 일인칭으로 스토리를 해설하는 경우처럼)가 아니라 객관적인 삼인칭 해설자로 그는 전능하고 전지하며 무소부재한 해설자의 모습(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때론 등장인물들의 속마음과 의도까지도 간파하며 평가한다)을 가진다. 특히 마가복음의 경우는 그의 견해가 하나님의 견해와 일치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말과 행동(견해)이 곧 그의 견해임을 알 수 있다(막 8:31-33은 이 모습의 가장 비근한 예가 된다). 우리는 이러한 해설자를 신학적으로는 영감된 해설자(inspired narrator)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므로 독서과정에서 독자는 이 해설자의 견해(=하나님의 견해=예수님의 견해)를 가장 진실하고 신뢰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뜻)`(8:33) 곧 `주의 길`(1:3)을 생각하고 또한 따르는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마가복음에서 독자가 이와 같은 해설자의 논평(commentary)을 간파함이 본문의 의미 곧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첩경이 된다. 여기서 해설자의 논평이란, 해설자가 사건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독자가 알지 못하는 특정한 용어들(아람어나 이름)이나 인물들의 행동을 보충적으로 설명하거나 해석(판단)하는 것들로 때론 괄호 안에 기록하거나 부사절로 표현한 것들을 말한다. 여기에는 이유( ; ; )나 목적( ), 그리고 결과( )나 설명( )을 나타내는 헬라어의 불변화사들인 관계사나 부사와 전치사들이 이끄는 설명절들이 이에 속한다. 이 중에 특히 이 이끄는 이유절의 설명문(한글개역성경에는 주로 "이는"으로 번역됨)의 예들로는 막 1:16, 22; 2:15; 3:10, 21; 5:8, 28, 42; 6:14, 17, 18, 20, 31, 48, 50, 52; 7:3; 9:6, 31, 34; 10:22, 45; 11;13, 18, 32; 12:12; 14:2, 40, 56; 15:10; 16:4, 8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우리가 앞으로 구체적으로 논의하겠지만 막 8:14의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없더라"의 언급은 16절에 대한 일종의 해설자의 논평으로 간주(Gundry 1993:407)할 때 막 8:14-21의 해석의 중요한 단서를 주게된다. 그리고 막 9:6의 해설자의 논평은 예수님의 변형기사(9:2-13)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해석적 단서를 제공하며, 또한 막 16:8의 논평도 그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다.
2) 아이러니(irony)에 대한 이해아이러니는 저자가 스토리를 통해 자신의 의도를 독자에게 극적으로 알리는 수사기법(Muecke 1969; Booth 1974)으로서 마가복음에는 아이러니가 자주 등장한다. 이 경우 마가복음에서 아이러니(Fowler 1991; Camery-Hoggatt 1992)는 단순한 문학기법 정도로 이해하기보다는 `계시적 언어의 한 형태`(O`Day 1986:32)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아이러니가 되기 위해서는 작중인물들의 맹목적 무지(오해)와 저자의 명백한 의도 사이에 나타난 불일치나 대조에 의해 작품 의도와 작중인물 사이에 커다란 거리가 발생할 때 나타나는 것으로 이 경우 해설자의 안내를 따라 독자에게 전달되는 작품(또는 사건)의 의미는 매우 극적이고 역동적으로 전달된다. 특히 마가복음이 16:8로 끝난다면 마가복음 전체가 일종의 극적 아이러니를 가진 복음으로 제시되어지는데(Thompson 1978:263, 267; Rhoads & Michie 1982:59-62), 그 이유는 막 1:1에서 해설자는 복
음에 대한 천둥 같은 선언("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으로 시작하면서 그 마지막 구절인 16:8은 부활의 소식을 전해야 할 여인들이 무서움으로 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해설자의 논평("이는 그들이 무서워하였더라")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즉 그렇게 확신있게 선언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무서움 가운데 침묵될 수 있나? 이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마가복음의 중심된 메시지이다. 그 외에도 막 2:17; 4;11-12; 8:4, 14-21; 9:5-7; 14:55-65; 15:18; 15:25-32; 16:1-8에 아이러니가 나타나는데 특히 예수님의 수난기사(14-15장)에 반복하여 나타나는 아이러니한 표현들은 이미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알고있는 독자들에게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가 보다 극적이며 생생하게 전달되어진다. 결국 이와 같은 아이러니에 의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극적 의미는 독자들이 처한 핍박과 수난의 상황에서 제자도의 의미("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가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로 환원되어 독자들에게 극적인 반응을 촉구한다. 이런 까닭에 마가복음에 나타난 아이러니의 탐구는 우리의 주해와 설교에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3) 샌드위치 기법(sandwich technique or intercalation)에 대한 이해
`샌드위치 기법`은 저자가 사건의 의미를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한 문학기법 중 하나로 마가복음에 자주 나타나는데 이것은 마가복음의 구성 즉 줄거리(plot)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 모습은 샌드위치의 모양대로 하나의 스토리가 중간에 삽입된 다른 스토리에 의해서 두 쪽으로 나뉘어진 형태로 이 경우 강조점은 그 속에 있는 내부 스토리(inner story)나 혹은 두 쪽으로 나뉘어진 외부 스토리(outer story)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들 두 스토리가 함께 병합된 그 모습(샌드위치로서의 그 모습) 그대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이 문학기법은 소위 `보간기법`(interpolation: 외부 스토리에 강조)이나 혹은 `얼개기법`(framing technique: 내부스토리에 강조)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두 쪽으로 나뉘어진 외부 스토리와 그 중앙의 내부 스토리가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하나의 병합된 모습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마가복음의 샌드위치기법들은 아래와 같이 12개정도로 제시될 수 있다(Wright 1985:17): 막 1:21-22 <1:23-26> 막 1:27; 막 2:1-5a <2:5b-10a> 막 2:10b-12; 막 3:1-3 <3:4-5a> 막 3:5b-6; 막 3:20-21 <3:22-30> 막 3:31-35; 막 4:1-9 <4:10-12> 막 4:13-20; 막 5:21-24a
<5:24b-34> 막 5:35-43; 막 6:7-13 <6:14-29> 막 6:30-31; 막 11:12-14 <11:15-19> 막 11:20-25; 막 14:1-2 <12:3-9> 막 14:10-11; 막 14:53-54 <14:55-65> 막 14:66-72; 막 15:6-15 <15:16-20> 막 15:21-32; 막 15:40-41 <15:42-46> 막 15:47-16:8. 이 중에 특히 필자는 막 5:21-43(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여인); 6:7-31(제자들의 전도파송과 세례 요한의 수난); 11:12-15(무화과나무와 성전); 14:1-11(대제사장[유다]의 살해모의[배반]과 향유부은 여인); 14:53-72(예수의 심문와 베드로
의 심문)의 단락들을 앞으로 연재할 주해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을 고려하며 다룰 것이다: 1).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의 상호관계(character interactions)에 대한 이해; 2). 두 스토리들 사이의 관계(story relationships)에 대한 이해; 3). 끝으로 이 모든 것들을 저자에 의해 구성된 마가복음 전체의 작품세계(narrative world)와 플롯 가운데서의 이해(Wright 1985:61).
3. 구약의 세계와의 대화
지금까지 논의한 내러티브적 주해에 대한 논의는, 마가복음의 작품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의미를 그 내용(content)과 형식(form)을 함께 탐구함으로써 되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의 주해와 설교는 더 나아가 마가복음이 반영하고 있는 구약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마가복음은 특정한 개인으로서 저자가 창의적으로 기술한 작품이 아니라, 신앙공동체 가운데 받아들여져 온 다양한 신앙의 전승들에 의해 이해된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기술이기 때문에 우리의 내러티브적 주해와 설교에 있어서도 전승으로 전해진 이전의 본
문인 구약과의 깊은 의미관계(intertextuality라고 부름)를 탐구해야 한다. 이 경우 마가복음에 언급된 많은 구약의 본문들과 그에 따른 영상들(images)은 마가복음에 기술된 사건들을 이해하는 중요한 해석적 배경이 된다. 그 중에 특별히 출애굽사건과 관련된 광야(wilderness)와 시내산(Mt. Sinai)과 바다(sea)에 대한 이해와 성전(temple)과 왕권(kingship)에 대한 이해는 구약(의 전승들: 오경과 시편과 선지서들)을 통해서 그 개념이 발전되었음을 항상 주지해야 한다(Swartley 1992). 그러므로 본 주해와 설교는 이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논의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설명된 내러티브적 주해와 설교를 위한 서론적 이해는, 앞으로 연재될 필자의 글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해석적 배경과 단서`가 되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점을 항상 참고할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 특히 이 글을 시작하면서 필자의 기원이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주해방법과 설교로 인해 우리의 미래의 강단에 성경본문 자체의 세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더 없이 깊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무쪼록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거룩한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강권하셔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과 일에 능한"(눅 24:19) 온전한 사역자가 되어, 우리가 섬기는 교회들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준행하여 세상가운데 빛과 소금이 되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끝으로 필자는 본 지면에서 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사랑하는 독자들과 더 깊은 교제가 있기를 바라며 이 연재를 시작하고저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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